지구의 마지막 경고선인 1.5℃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작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5℃ 높아졌다.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기온보다 1.5℃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자'는 뜻을 모은지 8년 만이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한 것이 무색할 만큼 온도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이에 창간 9주년을 맞는 한스경제는 그간 천착해온 '1.5°C HOW' 캠페인에 맞춰 인류 생존 최후의 방어선인 1.5°C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부문별로 국내외 동향과 쟁점, 대안 등을 종합적으로 엮어 연중기획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스경제=강상헌 기자] 골프장 잔디가 폭염,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고 있다. 아무리 더운 날씨에 강한 잔디라고 하더라도 이상 기후가 반복되게 되면 생육 부진, 병해, 뭉침 현상(총생) 등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일부 골프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급격한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하이브리드 잔디'를 주목하고 있다.

◆폭염과 폭우에 펄펄 끓는 골프장 잔디

세계기상기구는 2023년부터 슈퍼 엘니뇨가 본격 시작돼 향후 5년간 역대급 폭염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는 가장 더운 여름 날씨와 가장 늦은 폭염이 나타난 해로 드러났다. 올여름(6~8월) 평균 기온은 25.6℃로 전국 기상 관측이 시작(1973년)된 이후로 가장 더웠다. 또 올해 서울 기준 가장 늦은 폭염은 지난 19일로 폭염 특보제 도입(2008년) 이후 가장 늦은 날이었다. 강수일은 감소했지만, 강우량은 증가해 집중호우와 가뭄이 번갈아 지속되는 이상 기후도 발생했다. 올해 여름에는 시간당 100mm 넘는 집중 호우가 총 9건이나 보고되기도 했다.

잔디는 비가 오면 바닥으로 물이 빠져야 한다. 그런데 물이 빠지기 전에 다시 햇볕이 쬐게 되면 고여 있던 물의 온도가 높아진다. 살아있는 식물을 뜨거운 물에 담가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매해 골프장들은 잔디 품질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잔디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지난해 잔디가 많이 죽어서 잔디를 구매하는 골프장이 많았다고 들었다. 잔디 농장의 재고가 없을 정도였다"라며 "지난해 정말 힘들었는데 올해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는 더 심하다. 기후 상황이 더 안 좋아져서 피해를 본 골프장들이 많다"고 전했다.

◆고온다습에 강한 난지형 잔디 교체 바람

골프장의 잔디는 생육적온에 따라 크게 한지형과 난지형 두 종류로 나뉜다. 양잔디로도 불리는 한지형 잔디는 관리가 어려운 편이지만, 서늘한 환경에서 잘 자라고 녹색을 유지하는 기간이 길다. 대표적인 종으로는 켄터키 블루그래스, 벤트그래스 등이 있다. 생육 온도는 26℃에서 35℃ 사이다. 반면 조선잔디로도 알려져 있는 난지형은 따뜻한 날씨에 강하다. 중지, 금잔디, 들잔디, 왕잔디, 비단잔디, 버뮤다그래스 등이 난지형 잔디다. 16℃에서 24℃ 사이에 생육이 잘 된다.

몇 년 전부터는 한지형 잔디를 사용하는 국내 골프장들도 변화하는 기후 환경에 맞춰 고온다습한 기후에 상대적으로 잘 버티고, 관리하기 더 쉬운 난지형 잔디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종신물산 잔디연구소 관계자는 본지에 "18홀 기준으로 한지형에서 난지형으로 교체하는 데 한 달이면 된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든다. 페어웨이와 러프를 다 바꾸면 18홀 기준으로 대략 12억 원이 든다. 여기에 공사 비용과 한 달 영업을 할 수 없는 부분까지 계산하면 금액이 상당하다"며 "그렇다 보니 영업하면서 일부분만 조금씩 바꾸는 곳이 많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대신 바꾸는 과정에서 한지형과 난지형 잔디가 공립해 어떤 곳은 누렇고, 어떤 곳은 녹색을 띤다. 외관상으로 보기가 안 좋다"고 말했다.

◆'이상 기후 대안' 하이브리드 잔디, 유지관리에 강점

잔디업계 관계자들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맞서 대응할 방안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예측 불확실성으로 인해 잔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적용 전략 마련이 어려운 것이다. 한 관계자는 "내년 여름은 얼마나 더울지 얼마나 비가 더 올지 언제부터 더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전혀 예상이 안 가기 때문에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기후변화에 따른 잔디 품질 저하를 최대한 줄이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은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다. 드론을 활용해 잔디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것이 그 예다. 또한 유럽에서는 LED 조명을 활용한 인공 채광기로 잔디의 광합성을 돕기도 한다.

축구장에 적용돼 있는 하이브리드 잔디를 골프장에 도입하는 것도 이상 기후 대안의 하나로 떠오른다. 골프장 하이브리드 잔디는 천연잔디 보통 90%와 인조잔디 10%로 구성된다. 10%의 인조잔디가 90%의 천연잔디의 생산점 훼손 등을 방지, 보완하는 것이다. 대개18홀 골프장들을 보면 4~5개 홀은 잔디 생육이 좋지 않다. 나무 그늘이 있다든지 위치적으로 잔디가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이라든지 다양한 이유가 있어서다. 당연히 이곳은 폭염, 폭우에 더 취약하다. 여기에 하이브리드 잔디를 깔게 되면 유지관리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인조잔디·하이브리드 잔디 전문기업 GSTG의 관계자는 "천연잔디는 생장점이 손상되면 바로 죽는다. 이를 인조잔디가 일차적으로 방어해 준다. 내구성을 3~4배 정도까지 더 끌어 올려준다는 테스트 결과가 있다. 또한 하이브리드 잔디는 좋은 상태의 잔디를 관리, 보수하는 데 용이하다"며 "다만 초기 설치비용이 비싸다. 18홀 전체를 다 깐다고 가정했을 때 천연잔디보다 3배 정도 더 들어간다. 하지만 관리 비용 측면에서는 저렴하다. 즉 하이브리드 잔디를 한번 설치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미도 강점이다. GSTG 관계자는 "10%의 인조잔디는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다. 이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천연잔디와 같은 색을 인조잔디에 사용한다. 천연잔디가 손상이 가더라도 좋은 자연미를 유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