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원=한스경제 김두일 경기취재본부장|흡사 멍석말이가 시작된 듯하다. 빈 곳간을 비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꼬투리 하나를 잡아 초가삼간까지 태울 기세다.
대한민국 최대 광역단체 경기도. 1400만 명이 넘는 도민의 선택을 받은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연간 수십조 원에 이르는 재정을 책임지고 민선 9기 경기도정을 시작했다. 기대만큼 준비한 공약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곳간을 열어보니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는 게 경기도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하나다. 정말 곳간이 비어 있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됐는가.
재정 상황을 공개하고 구조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새 도정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전임 행정의 책임을 묻자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재정의 실상을 설명하는 순간부터 논쟁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관사 문제도 그렇다. 12억원이라는 숫자만 떼어 놓으면 논란이 될 수 있다. 당연히 비용의 적정성은 검증받아야 한다. 하지만 도지사 관사가 필요한지, 현장 중심의 도정을 위해 어떤 공간과 기능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비용이 적절한지를 따져야지 숫자 하나만으로 모든 논의를 끝낼 일은 아니다.
더구나 관사는 개인의 재산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행정 목적의 공간이라면 그 필요성과 사용 방식, 예산의 적정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판단하면 된다.
비판할 수 있다.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새 도정의 출발 자체를 가로막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다.
경기도의 재정 구조에 실제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불필요하거나 우선순위가 낮은 지출은 무엇인지 하나씩 확인하는 일이다. 특히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사업과 예산이라면 이번 기회에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도민을 위한 사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사업은 아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라도 시대가 바뀌고 재정 여건이 달라지면 조정할 수 있다. 반대로 삭감했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된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의 사업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예산인가다.
그동안 경기도 곳간을 둘러싼 수많은 사업과 행사가 있었다. 이름만 보면 모두 도민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냉정하게 물어볼 때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도민에게 혜택이 돌아갔는가. 투입한 예산만큼 효과가 있었는가. 사업이 계속돼야 할 이유가 분명한가. 비슷한 사업이 중복되지는 않았는가. 성과보다 관행 때문에 살아남은 사업은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재정 개혁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마타도어가 아니라 검증이다. 추미애 지사의 재정 진단이 틀렸다면 무엇이 틀렸는 지 숫자로 반박하면 된다. 재정 비상이라는 판단이 과도하다면 그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 관사 예산이 과하다면 적정한 비용이 얼마인지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그것이 의회이고 언론이며 정치의 역할이다.
비판은 하되 대안을 함께 내놓는 것. 그것이 1,400만 경기도민이 바라는 정치일 것이다.
새 곳간지기에게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검증의 시작이다.
추미애 지사 역시 재정 위기를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살릴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도민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면 도정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은 새 도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곳간을 설계한 사람도, 관리한 사람도, 감시한 사람도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지난 예산을 놓고 정치적 공방만 벌일 때가 아니다.
곳간에 구멍이 있다면 찾아야 한다. 새고 있다면 막아야 한다. 불필요한 지출이 있다면 걷어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민생예산이라면 지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이해관계가 불편해진다고 해서 개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목소리가 큰 데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크기가 주장의 정당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추미애 지사에게도 똑같이 말하고 싶다. 빈 곳간을 탓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왜 비었는지 끝까지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도민에게도 묻고 싶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주인의 이름이 바뀐 곳간인가. 아니면 정말 다시는 새지 않는 곳간인가.
아직 추미애 도정은 제대로 시작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비판하더라도 일할 기회는 주자.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부터 깨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경기도의 곳간은 어느 정치세력의 것도, 어느 행정가의 것도 아니다. 1400만 경기도민의 곳간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곳간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누가 열쇠를 쥐었느냐가 아니라, 그 열쇠로 무엇을 바꿀 것인지 지켜보는 일이다.
추미애 지사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이제는 일하게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