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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자광의 시간보다 전주의 원칙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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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호남취재본부 전북본부장.
이인호 호남취재본부 전북본부장.

| 전주=한스경제 이인호 기자 |전주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며 시작된 6조원대 옛 대한방직 부지 개발사업이 이제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시계는 오는28일을 향하고 있다. 전주시와 ㈜자광이 체결한 사업시행 협약과 관련해 착공 여부를 둘러싼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단순히 '착공하느냐, 못 하느냐'가 아니다.

그동안 전주시가 시민들에게 설명해 온 사업의 조건과 약속이 그대로 지켜질 수 있느냐, 그리고 지켜지지 않을 경우 행정이 어떤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지난 3일 전주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끌어올린 최한별 의원의 질의가 눈길을 끈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 의원은 6조원대 사업을 추진하는 자광의 사업수행 능력부터 따져 물었다.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11억6000여만원의 체납 문제가 불거졌고, 전주시가 자광 소유 토지 10필지를 압류한 상황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공공기여를 포함한 대규모 개발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다만 이 대목에서 행정이 주목해야 할 것은 체납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법에 따른 체납처분과 사업시행 협약의 이행 여부를 각각 엄정하게 판단하는 일이다.

조지훈 전주시장의 답변은 비교적 분명했다.

자광의 사업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고, 체납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재산과 채권, 은닉재산 등을 추적해 압류하는 방식으로 징수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행정이 특정 민간사업자의 사정을 봐주기 위해 체납처분이나 사업 관련 원칙을 달리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최 의원의 지적에 대해 조 시장 역시 "실제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는 행정이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에 가깝다.

더 중요한 것은 협약 이행 문제다.

전주시는 당초 사업시행 협약에 따라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일로부터 일정 기간 내 착공하지 않을 경우 협약 취소 등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근거로 들고 있다. 반면 주택법에는 사업계획 승인 이후 착공과 관련해 별도의 규정이 존재한다. 법률과 협약의 규정이 서로 다른 지점이 있다면 답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법률적 검토에서 찾아야 한다.

조 시장이 오는 28일 이후 협약 취소 등 제반 사항을 법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래서 주목된다.

특히 이날 답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또 있다.

전주시는 현재까지 자광으로부터 협약 변경 요청을 공식적으로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동시에 협약을 변경하려면 전주시의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고, 현 시점에서는 당초 협약에 따라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결국 공은 사업시행자와 행정 모두에게 넘어가 있다.

자광이 당초 약속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사업 조건의 변경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인지가 첫 번째다.

전주시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같은 법과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가 두 번째다.

최근 시민사회가 '동시 착공·동시 준공'이라는 기존 조건을 강조하며 협약 변경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자광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먼저 추진하고 관광타워 등 다른 시설의 사업 시기를 달리하는 방식의 변경을 요구할 경우 이를 사실상 추가적인 특혜로 볼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물론 사업 과정에서 현실적인 사정이 발생할 수 있다.

대규모 민간개발사업에는 금융시장, 시공사 선정, 분양 여건 등 사업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행정이 사업자의 사정만으로 협약의 기준을 임의로 바꿀 수도 없다.

반대로 협약에 명시된 문구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법률상 허용되는 절차까지 배제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자광을 살릴 것이냐, 끝낼 것이냐'와 같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무엇이 협약의 내용이고, 무엇이 법률의 규정이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행정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차분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전주시가 해야 할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법대로 판단하고, 협약대로 확인하고, 시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하면 된다.

만약 협약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법적·행정적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조 시장 역시 이날 협약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도시관리계획을 이전 상태로 환원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그 이후 새로운 사업자가 새로운 사업계획을 제안한다면 그것 역시 기존 사업의 연장선으로 당연시할 것이 아니라 관련 법령과 조례, 전주시의 도시계획 절차에 따라 다시 판단하면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원칙을 실제로 지킬 수 있느냐이다.

옛 대한방직 부지는 단순한 민간 소유 토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도시의 중심에 자리한 대규모 부지인 만큼 개발 방식에 따라 전주의 도시공간과 교통, 주거환경, 상권, 공공재정, 시민의 삶까지 장기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도시관리계획 변경 과정에서 공공기여와 특혜 논란이 제기됐던 사업이라면 더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사업이 성공하면 모든 논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사업이 좌초한다고 해서 행정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진짜 행정의 평가는 사업의 성패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9월 28일은 그래서 단순한 날짜가 아니다. 자광에게는 사업의 중요한 일정일 수 있지만 전주시에겐 행정의 원칙을 확인하는 시험대다.

사업자가 약속을 지키면 그 약속대로 가면 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협약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

협약 변경이 필요하다면 적법한 절차와 시민적 검증을 거치면 된다. 다만 어느 경우에도 '이번만 예외'라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도 결국 거창한 것이 아니다. 특혜도 안 되고, 역특혜도 안 된다. 사업자에게 유리해서도 안 되고 행정에 편해서도 안 된다. 그저 법과 원칙대로 하라는 것이다.

6조원이라는 숫자에 행정이 압도돼서도 안 된다. 대규모 민간투자라는 이유로 법과 원칙이 느슨해져서도 안 된다.

반대로 시민들의 비판 여론을 의식해 법률적 판단을 건너뛰어서도 안 된다. 전주의 가장 큰 개발사업 중 하나가 이제 '속도'보다 '원칙'을 시험받고 있다.

28일 이후 전주시가 내놓을 답은 특정 사업자에 대한 답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전주에서 추진될 대형 민간개발사업에 행정이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보여주는 선례가 돼야 한다.

자광의 시간이 끝나는지 이어지는지는 사업자가 결정할 몫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전주의 원칙을 어떻게 세울지는 전주시의 몫이다.

이제 시민들이 지켜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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