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최형철 대기자 | 지난 12일 광화문광장에 23개의 돌기둥이 '기습 상륙'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6·25 한국전쟁 참전국을 기리기 위해 207억 원을 들여 만든 '감사의 빛 23'이다. 일명 '받들어 총' 조형물로 불린다.
서울시 스스로 '받들어 총 형태로 만들어진다'고 홍보했던 이 조형물은 지난해 초 발표 직후부터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광화문광장의 역사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 선거를 앞둔 전시행정이라는 의혹,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골고루 쏟아졌다. 반면 찬성하는 측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희생에 대한 당연한 감사'라고 맞섰다. 심지어 북한 평양 중심가에도 '조중우호탑'이 있는데, 우리도 수도 서울 한복판에 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억지스런 주장까지 등장했다.
시대착오적이고, 상식밖의 '받들어 총' 조형물을 지켜보자니, 문득 320여 년 전의 한 기념물이 오버랩 된다. 우암 송시열의 유언으로 세워진 '존명사대'(尊明事大)의 상징물 만동묘다.
17~18세기 초를 살다간 우암은 노론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효종의 북벌정책에 호응, 청나라를 오랑캐로 규정하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생의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다. 송시열은 숙종과 맞서다가 사약을 받으면서도 제자들에게 자신이 거처한 충북 괴산군 화양동에 만동묘를 세우라는 유언을 남겼다.
1703년 수제자 권상하 등이 우암의 뜻을 받들어 명나라 신종(만력제)과 의종(숭정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 만동묘를 북향으로 지었다. 신종은 임진왜란때 조선에 원군을 보냈고, 의종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다. 북향으로 지은 이유는 청나라에게 등을 돌린다는 의미 외에, 명나라를 향한 사대의식의 발로였다. 실제 조선은 공식 외교문서를 제외하고,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았다.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崇貞)은 무려 20세기 초, 200년 가까이 오직 조선에서만 사용됐다. 함께 건립한 화양서원은 노론의 본거지가 되었고, 노론 유생들의 성지순례 종착지였다. 게다가 화양서원은 '화양묵패'를 발행해 관료와 백성을 협박하고 재산을 강탈하는 사실상 권력 기관으로 변질되었다. 화양묵패는 서원의 유지관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민폐' 유가증권이었다.

오세훈의 '받들어 총'과 송시열의 만동묘, 그리고 그를 기리는 화양서원은 묘한 닮은꼴이 있다. 기념물의 참모습은 건립 의도와 장소, 완공 시점을 입체적으로 살펴야 엿볼 수 있다.
첫째, 둘 다 '감사'와 '의리'를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만동묘는 명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것이었고, '받들어 총'은 한국전쟁 때 참전한 22개국의 희생에 감사한다는 것이다. 명분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라를 도운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은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 명분이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누구의 이익을 위해 실현 되느냐에 있다.
둘째, 정치적 맥락이다. 만동묘는 존명사대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노론이 권력을 결집하고 반대파를 압박하는 정치적 거점이 되었다. '받들어 총' 역시 6·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준공식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오세훈이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축사까지 했으니, 치적 홍보와 표심 공략이라는 비판을 비껴가기 어렵다.
셋째, '장소의 문제'를 안고 있다. 화양동에 만동묘를 세운 것은 이념적 이유에서였다. 현실의 명나라는 이미 망한 지 오래였고, 조선은 청나라와 공존해야 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망국의 황제를 기리기 위해 북향 사당을 지은 것은 현실보다 이념을 앞세운 노골적인 반청(反淸) 정치 행위였다. 오세훈의 '받들어 총'도 마찬가지다. 촛불 혁명과 민주주의 집회 현장으로 기억되는 광화문광장에 군사적 사열 형태의 조형물을 세워 철 지난 이념논쟁 한복판에 뛰어들겠다는 의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연 적절한 장소 감각인지는 오는 6월3일 지방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더구나 '받들어 총'은 6.25m 높이로, 세종대왕 동상(10.4m)에 근접해, 부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닮은꼴에서 정작 주목해야할 대목은 따로 있다. 그럴싸한 명분으로 시작된 기념물이 권력과 결합하는 순간 민폐 소굴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결국 19세기 중후반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가장 먼저 철퇴를 맞은 곳이 만동묘와 화양서원이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는 만동묘를 본보기로 시작해 서원을 철폐하면서 시작됐다.
오세훈은 '받들어 총' 준공식에서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새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민들은 200억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는 것에 놀랍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온라인 공간에선 '받들어 총' 조형물이 "양갈비 뼈다귀를 닮았다"라는 조롱이 넘쳐나고 있다.
마침 서울 용산에 전쟁기념관이 있다. 22개국 참전을 기념하는 '받들어 총' 조형물이니만큼, 이름과 콘텐츠에 합당하다. 새로운 임기의 서울시장이 긴급 '철거'를 명령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