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신혜영 기자] 5월, 산 아래 세상은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따스한 봄볕이 내려앉으며 완연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그러나 '일본의 지붕' 도야마현으로 시선을 돌리면 전혀 다른 차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해발 3,000m급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이어진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일 년의 절반 가까이를 눈 속에 잠겨 있던 이 산맥은 4월 하순 개통과 동시에 장엄한 절경을 드러낸다. 특히 5월은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특별한 시기다. 산 아래에서는 봄바람을 느끼고, 고도를 올릴수록 겨울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이 이색적인 경험은 오직 지금만 허락된다.(자료제공_하나투어)

하늘과 맞닿은 길로의 진입, 비죠타이라(美女平)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는 단일 목적지가 아니다. 도야마현의 다테야마역에서 나가노현의 오기자와역까지, 총 37.2km에 달하는 험준한 산악 구간을 다양한 교통 수단을 갈아타며 횡단하는 거대한 여정 그 자체다.
여정의 시작점인 다테야마역에서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약 7분간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해발 977m의 '비죠타이라'에 닿는다. 산 아래의 포근한 날씨와 달리, 이곳에 내리는 순간부터 공기의 결이 달라짐을 체감할 수 있다. 수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원시림인 비죠타이라 일대는 봄이 되면 짙어지는 녹음 사이사이로 아직 다 녹지 않은 맑은 잔설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5월 해빙기가 빚어낸 오케스트라, 소묘 폭포(称名滝)
비죠타이라에서 알펜루트의 최고 지점인 무로도로 향하는 50분간의 고원 버스 탑승은 여정 중 손에 꼽을 만큼 극적인 시각적 변화를 경험하는 구간이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차창 밖 풍경은 신록의 푸른빛에서 옅은 회색으로, 이내 눈이 시리도록 완벽한 무채색의 흰색으로 변모해 간다.
버스 구간의 백미는 단연 350m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소묘 폭포'다. 일본 제일의 낙차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본격적인 해빙기를 맞은 5월, 다테야마 연봉에서 녹아내린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쏟아낸다. 일 년 중 가장 맹렬하고 웅장한 물줄기다.

거대한 설벽 사이를 걷다, 유키노오타니(雪の大谷)
해발 2,450m, 구름 위의 평원이라 불리는 '무로도 고원'은 알펜루트를 횡단하는 모든 여행자의 감동이 최고조에 달하는 구간이다. 특히 5월의 무로도에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이유, '유키노오타니(눈의 대계곡)'가 기다리고 있다.
겨우내 쌓인 다테야마의 눈을 깎아내고 파내어 아스팔트 길을 열면, 도로 양 옆으로 거대한 설벽이 세워진다. 버스 높이를 아득히 뛰어넘어 건물 6~7층 높이에 육박하는 거대한 눈의 협곡. 그 사이로 난 500m 남짓한 보행자 전용 도로를 직접 걷는 경험은 경이로움을 넘어 비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특히 5월은 4월 개통 직후에 비해 날씨가 맑고 청명한 날이 많아,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마주할 확률이 높다. 손에 닿을 듯한 깎아지른 하얀 눈벽과 그위로 열린 짙푸른 하늘의 강렬한 대비는 오직 이 시기에만 허락된 절경이다.


공중에서 만나는 알프스, 다이칸보(大観峰)
무로도 고원에서 전기버스를 타고 올라가면 다이칸보역에 도착한다. 절벽에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다이칸보 역 옥상 전망대에 서면, 눈앞에 구로베 호수와 우시로타테야마 연봉의 장대한 파노라마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다음 코스까지는 '다테야마 로프웨이'를 타고 이동한다. 발아래로는 눈 덮인 거대한 계곡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정면으로는 뾰족하게 솟은 영봉들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7분간의 공중 산책은 알펜루트 횡단 중 단연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인공물과 대자연의 묵직한 조화, 구로베 댐(黒部ダム)
눈부신 북알프스의 산세를 뒤로하고 이어지는 여정의 끝자락에는 인간의 성취를 보여주는 '구로베 댐'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1963년 완공을 위해 무려 7년의 시간과 1천만 명의 인력이 동원된 이 건축물은 높이 186m로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자연의 험난함에 맞선 끈기가 녹아있는 장소다.
거센 물줄기를 뿜어내는 여름철 방수 시즌 전인 5월의 구로베 댐은 잔잔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겨우내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던 구로베 호수의 수면이 따스한 5월의 햇살을 받아 서서히 녹아내리며 특유의 에메랄드빛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새하얀 얼음과 짙푸른 호수가 공존하는 풍경은 이 시기에만 엿볼 수 있는 비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