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미국이 지난달 일본과 함께 엔화 매수에 나선 배경에는 엔화 급락이 미 국채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엔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면 글로벌 투자자들의 포지션 청산이 이어지고, 일본계 자금까지 미 국채 매도에 가세하면서 미국 가계와 기업의 조달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29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28일(현지 시각)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보낸 답변서를 소셜미디어 엑스(X)에 공개했다. 답변서는 전날 워런 의원 측에 전달됐다.
워런 의원은 앞서 미 재무부가 일본과의 외환시장 공동 개입 과정에서 환율안정기금(ESF)을 사용한 법적 근거와 납세자가 부담할 수 있는 위험, 실제 투입 규모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ESF는 미국 재무부가 외환시장 안정 등을 위해 운용하는 기금이다.
▲ 엔화 급락→美국채 매도···워싱턴이 경계한 '금리 충격'
베선트 장관은 이번 조치가 단순히 일본의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미국 국채의 주요 보유국이자 핵심 무역 상대국이며 조약 동맹국"이라며 "엔화 시장의 무질서한 움직임은 투자 포지션의 강제 청산을 촉발해 세계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미국 가계와 기업이 부담하는 금리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핵심은 일본 자금과 미 국채 시장의 연결 고리다. 엔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 환율 변동에 노출된 투자자들이 보유 자산을 한꺼번에 처분할 수 있다. 일본 투자자들이 미 국채 매도에 나설 경우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수익률은 상승한다. 미 국채 금리는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 등 미국 금융시장 전반의 금리를 결정하는 기준 역할을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엔화 급락을 일본만의 환율 문제로 방치하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 국채 보유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서 자금 이동이 본격화하면 미국 장기금리에도 직접적인 압력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日에 돈 빌려준 것 아니다"···재정 부담 논란 차단
베선트 장관은 미국의 엔화 매입에 별도의 재정 투입이나 일본에 대한 대출은 없었다고 밝혔다. 재무부가 보유하고 있던 ESF 외화자산을 엔화로 바꿨다는 설명이다.
그는 "의회의 신규 예산 배정은 전혀 없었고 일본에 어떠한 신용도 제공하지 않았다"며 "일본은 미국 재무부에 갚아야 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 "존재하지 않는 채무를 일본이 상환하지 못할 위험도 없다"고 했다.
워런 의원이 제기한 납세자 부담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이다. 다만 미 재무부는 이번 개입에 실제로 얼마를 투입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외환시장 개입의 법적 근거도 제시했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 연방법 제5302조에 따라 재무장관이 대통령 승인을 받아 질서 있는 환율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외환거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엔화 매수 역시 이 규정에 근거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 28년 만에 엔화 직접 매수···美 환율정책 변화 주목
미국과 일본은 지난 7월 말 엔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했다. 미국 정부가 엔화를 직접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한 것은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과거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은 일본 당국이 엔화를 사고 달러를 파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이번에는 미국까지 엔화 매수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엔화 약세가 일본의 수입물가나 무역 문제를 넘어 미 국채 시장과 미국 장기금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 미국의 직접 개입으로 이어진 셈이다.
베선트 장관의 이번 답변은 미국 재무부가 환율 안정과 미 국채 시장을 사실상 하나의 금융안정 문제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엔화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경우 미국이 외환시장 움직임과 미 국채 수급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엔화 매수는 단순한 환율 방어를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관리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며 "향후 일본의 통화정책과 미 국채 금리 움직임에 따라 외환시장 개입 논의가 재차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