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이 전 세계 자본시장을 휩쓸면서, 뉴욕 증시뿐 아니아 아시아 주요 증시의 상승세도 대형 기술주가 이끌고 있다. 일부 종목이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논란 속에 전문가들은 "미국의 AI 거품이 아시아로 번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기술주가 흔들릴 경우 아시아 증시도 연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4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홍콩 항셍지수 수익률의 50%는 AI 붐의 수혜가 기대되는 알리바바·샤오미·콰이쇼우를 포함한 6개 기술기업이 주도했다.
한국에서도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두 종목이 코스피 수익률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의 반도체 제조사 TSMC는 올해 들어 대만 자취안 지수 상승분의 절반 이상을 이끌고 있다.
퍼스트 트러스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뉴욕 증시에서도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세븐(애플·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테슬라·엔비디아)이 올해 3분기까지 S&P500 지수 수익률의 42%를 차지했다.
FT는 "소수 송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이들이 종종 매우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은 미국 AI 부문이 급락할 경우 아시아 시장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아시아 주식 전략 책임자인 프랭크 벤짐라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미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며 "만약 미국에 거품이 있다면, 아시아에도 거품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AI 열풍 속 반도체주 질주…"거품 아닌 구조적 성장" 시각도
아시아의 AI 관련 투자 열기는 주로 반도체와 칩을 설계하거나 생산해 첨단 AI 모델 학습 및 실행을 지원하는 기업들에 집중돼 있다.
특히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의 주가가 AI 열풍 속에 급등하며 고평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캠브리콘 테크놀로지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506.2배, SMIC는 221.3배로, 엔비디아의 57.7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반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인 TSMC의 PER은 24.7배 수준에 그친다.
다만 일각에서는 중국의 신흥 기술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단순히 밸류에이션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헤지펀드 로터스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 하오 홍은 "밸류에이션만 보고 이런 신흥 기업들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캠브리콘의 경우 이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통적으로 경기순환 산업으로 분류되는 반도체 업종의 일부 기업들은 올해 큰 폭의 주가 상승을 기록했는데, 단순 AI 거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주가가 두 배 이상 뛰었고, SK하이닉스는 약 250% 상승했다. 두 종목은 각각 코스피 지수의 18.2%, 11.7%를 차지하고 있다.
블루웨일캐피털의 창립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인 스티븐 유는 "데이터 저장 및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이는 데이터 저장 방식의 '대규모 리프레시 사이클(mega refresh cycle)'을 의미하며, 일종의 슈퍼사이클 진입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일부 중국 기술주들이 미국 빅테크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아시아 기술주의 밸류에이션은 미국보다 낮다. 나스닥100 기업들의 평균 12개월 후행 PER이 35배인 반면, 항셍테크지수의 경우 20배에 불과하다. 또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PER은 여전히 아마존이나 애플보다 낮은데, 이는 중국 정부의 기술산업 규제 강화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이다.
투자사 나인티원의 아시아태평양·아시아(일본 제외) 포트폴리오매니저 찰리 린턴은 "미국 기술주의 일부는 AI 수익화 기대가 과도하게 반영된 반면, 아시아 기술주는 이익 성장과 재무 건전성이 뒷받침된 합리적인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폴라캐피털의 신흥시장 펀드매니저 제리 우는 "최근 아시아 기술주 상승은 단순한 버블이 아니라, 혁신적이고 잠재력 있는 중국 자산들이 재평가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