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국제뉴스) 이정주 기자 = "도전 3인방." 1990년대 초반 바둑팬이었다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이름이다.
당시 한국 바둑계는 조훈현과 서봉수의 천하였다. 국내 주요 타이틀은 두 사람의 몫이었고 결승전 대진표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조훈현과 서봉수의 이름으로 채워졌다. 팬들은 이를 '조서전쟁'이라 불렀고, 두 거장의 승부를 보며 한 시대를 즐겼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양강 체제에도 균열은 찾아왔다.
유창혁과 이창호, 최명훈. 당시 바둑계는 이들을 '도전 3인방'이라 불렀다.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던 조훈현과 서봉수에게 끊임없이 도전했고, 결국 한국 바둑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프로당구 LPBA를 바라보는 팬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시절 바둑을 함께 즐겼던 세대다. 그래서일까. 현재 LPBA를 바라보면 문득 그 시절 바둑판이 떠오른다.
# 28번의 우승, 사실상 두 사람의 시대...


현재 LPBA에는 절대적인 두 이름 김가영과 스롱 피아비다. LPBA 출범 이후 김가영은 무려 19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스롱 피아비 역시 9차례 정상에 오르며 유일하게 김가영과 어깨를 나란히 한 선수로 자리 잡았다.
두 선수가 합작한 우승 횟수만 28회. LPBA 역사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두 선수의 이름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실제로 중요한 대회가 열릴 때마다 팬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두 선수에게 집중된다. "이번에도 김가영일까." 혹은 "이번에는 스롱일까."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만큼 두 선수가 구축한 벽은 높고 견고하다.
이번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은 두 선수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김가영이 우승하면 LPBA 최초로 개인투어 20승과 누적 상금 10억원 돌파라는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스롱 피아비 역시 우승할 경우 통산 10번째 우승과 함께 누적 상금 4억원을 돌파하게 된다. 두 선수 모두 또 하나의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스포츠 역사는 언제나 기록을 세우는 선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등장할 때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 LPBA의 '도전 3인방'은 누구인가
현재 LPBA에서 차세대 주자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선수는 정수빈, 한지은, 박정현이다.



세 선수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녔다. 한지은은 가장 정상권에 다가선 선수다. 지난 시즌 상금랭킹 7위, 랭킹포인트 5위에 올랐고 전체 애버리지 0.991로 전체 3위를 기록했다. 객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이미 우승 경쟁권에 들어섰다고 평가받는다.
정수빈은 가장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 선수다. 지난 시즌 첫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자신의 이름을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상금랭킹과 랭킹포인트 모두 10위에 올랐고,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과 스타성까지 갖춰 차세대 간판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박정현은 가장 어린 미래다. 지난 시즌 상금랭킹 27위, 랭킹포인트 23위에 머물렀지만 성장 가능성만큼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LPBA가 기대하는 차세대 자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이처럼 세 선수의 위치와 색깔은 다르지만공통점도 있다. 아직 개인투어 우승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두가 김가영과 스롱이라는 거대한 벽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30여 년 전 조훈현과 서봉수 앞에 섰던 유창혁, 이창호, 최명훈처럼 말이다.
# 세대교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조훈현과 서봉수의 시대도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았다. 유창혁이 먼저 흔들고, 이창호가 조금씩 간격을 좁혔으며, 최명훈이 뒤를 받쳤다. 그렇게 수많은 도전과 실패, 성장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바둑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LPBA 역시 마찬가지로아직은 김가영의 시대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있다. 스롱 피아비 역시 굳건하게 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각각 드들이 달성한 위업 19회와 9회우승 횟수가 이를 증명한다.하지만 스포츠에서 영원한 왕좌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도전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고, 또 누군가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그 과정이 쌓여 결국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 3일 Q라운드로 막을 올리는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이번 대회는 김가영에게는 LPBA 최초 20승과 누적 상금 10억원 돌파, 스롱 피아비에게는 통산 10승과 누적 상금 4억원 돌파를 향한 도전 무대다.
하지만 팬들의 시선은 기록만을 향하지 않는다. 30여 년 전 바둑팬들이 조훈현과 서봉수의 승부를 지켜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 주인공의 등장을 기다렸던 것처럼, 지금 LPBA 팬들 역시 또 다른 이름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궁금해하고 있다.
한지은, 정수빈, 박정현.
아직은 우승보다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선수들이다.그러나 30여 년 전 '도전 3인방'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과연 이번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누군가 김가영과 스롱의 견고한 성벽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1990년대 바둑판 위에서 시작된 작은 도전이 결국 한국 바둑의 주인이 바뀌는 결과로 이어졌듯, LPBA의 새로운 이야기 역시 어쩌면 이번 대회에서 첫 장을 넘기게 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