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국제뉴스) 이정주 기자 = 프로당구(PBA) 2026-27시즌 두 번째 투어인 '국민의 행복쉼터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이 3일부터 11일까지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 그랜드호텔 컨벤션타워에서 열린다.
그동안 주로 겨울철에 개최되며 PBA의 대표적인 연말 투어로 자리 잡았던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은 이번 시즌 특별히 여름의 초입으로 자리를 옮겨 당구 팬들을 찾는다. 이번 대회에는 다오반리(NH농협카드), 응우옌쩐타인타오 등 우선등록을 통해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베트남의 차세대 3쿠션 유망주들이 대거 데뷔전을 치러 녹색 테이블에 거센 동남아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다오반리, 응우옌쩐타인타오, 톤비엣호앙밍 등 베트남 기대주들의 PBA 데뷔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와일드카드로 출전하는 톤비엣호앙밍은 5일 밤 11시 PBA 랭킹 1위 다니엘 산체스와 128강전을 치른다.
그런데 이 대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흥미롭지만은 않다.
# 최상위 1번 시드의 독(毒)…산체스, 또다시 미지의 복병과 대결
'스페인 3쿠션 전설'이자 이번 대회 디펜딩 챔피언인 다니엘 산체스(웰컴저축은행)와 베트남 국적의 와일드카드 초청 선수 톤비엣호앙밍의 대결이다. 두 선수는 오는 5일 밤 11시에 1회전(128강전) 맞대결을 펼친다.

문제는 산체스가 주최 측의 와일드카드 배정 방식으로 인해 두 대회 연속으로 전력을 파악할 수 없는숨은 복병을 1회전부터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산체스는 지난 1차 대회(우리금융캐피탈 챔피언십)에서도 주최사 특별 초청 선수인 '당구 인플루언서' 해커와 128강에서 만나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하며 자존심을 구긴 바 있다. 2차 대회에서 명예 회복을 노리던 산체스는 경기운영위원회의 배정 결과 또다시 와일드카드 선수와 맞붙게 됐다.
톤비엣호앙밍은 세계 당구 연맹(UMB) 아마추어 랭킹 130위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2025 포르투 3쿠션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는 깜짝 활약을 펼친 바 있다.단판 세트제로 치러지는 PBA 128강의 특성상 당일 컨디션과 테이블 적응도에 따라 누구든 이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구조다.

과거 '당구 황제' 프레드릭 쿠드롱 역시 와일드카드로 나선 해커에게 덜미를 잡혔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이처럼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선수들과의 대결은 그날의 기세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최상위 랭킹에 위치한 산체스는 경기 영상 조차 검토할 수 없는 미지의 복병과 단판 서바이벌을 벌여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했다.
# 흥행에 가려진 1위 예우…'이겨야 본전'인 정보 불균형의 불공정 대진
PBA 경기규칙에 따르면 정규 투어 대진표는 직전 10개 대회의 랭킹 포인트를 합산한 순위를 기준으로 지그재그 형태로 고르게 분배하는 'Z 시스템'을 적용해 배정한다. 또 포인트 랭킹이 없는 와일드카드 및 우선등록 선수의 대진표 배정은 'PBA 경기운영위원회'가 결정 한다고규정되어 있다. 특히 경기규칙 113조에는 "와일드카드 운영은 PBA와 스폰서가 협의 운영하되 스폰서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이 결국 스포츠의 본질인 공정성보다 '단기적인 흥행 효과를 노린 매치메이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상적인 스포츠 토너먼트라면 상위 시드를 받은 선수에게 비교적 전력이 약한 상대를 배정하거나 대진상의 이점을 주는 것이 '랭킹 1위에 대한 예우'이자 시드 제도의 본질이다. 힘겹게 쌓아 올린 랭킹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PBA 시스템 아래서는 와일드카드로 합류하는 숨은 강자가1번 시드와반복해서 맞붙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최상위 랭커가정보 불균형의 피해를 보고 있다. 상대는 랭킹 1위의 모든 경기 스타일과 습관을 철저히 분석하고 들어오는 반면, 랭킹 1위 선수는 상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 이기면 당연한 것이고 지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이겨도 본전의 게임'을 강요받는 셈이다. 결국, 흥행 카드를 만들기 위해 최상위 선수의 권리와 이점을 완전히 빼앗아 가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대회 전체 흥행 망치는 자가당착 피해야
물론 대회 주최 측과 타이틀 후원사 입장에서는 1회전부터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대진을 원할 수 있다. 당구계의 거물과 베일에 싸인 복병의 대결은 그 자체로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대진 배정이 반복될 경우, 대회 전체의 장기적인 흥행에는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이 당구계 안팎의 중론이다. 다니엘 산체스와 같은 특급 스타 선수들이 가급적 마지막 라운드까지 살아남아 격돌하는 것이 투어 전체의 무게감과 흥행에 훨씬 도움이 된다. 만약 이번 2차 대회에서도 산체스가 미지의 복병에게 발목을 잡혀 1라운드에서 탈락해 버린다면, 선수 개인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뿐만 아니라 비싼 값을 치르고 대회를 찾은 팬들과 스폰서에게도 찬물을 끼얹는 참사가 될 수 있다.
더욱이 문제는 특정 선수의 유불리를 넘어 시드제도 자체의 취지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랭킹은 선수들이 수년간 쌓아온 성적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배정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최상위 시드가 반복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강자들과 맞붙게 된다면, 랭킹이 주는 실질적 혜택은 사실상 사라질 수밖에 없다.
눈앞의 작은 화제성을 위해 거물 선수를 희생양으로 삼는 자가당착식 대진 배정은 프로당구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국민의 행복쉼터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은 3일 오후 2시 LPBA Q라운드를 시작으로 9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이번 대회는 현장을 찾는 당구 팬들을 위해 전 경기 무료 관람으로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