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래된 문헌에 깃든 한 인간의 체온, 우암선생계녀서
오래된 문헌은 대개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사료로서의 값어치를 지닌다. 그러나 이따금 엄격한 격식과 정제된 필체 사이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다디단 온기가 배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 소개하는 한글 필사본 『우암선생계녀서(尤菴先生戒女書)』 한 책이 바로 그러하다. 겉으로는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출가하는 맏딸을 위해 지어 준 수신서(修身書)를 훗날 그 후손이 옮겨 적은 문헌에 지나지 않으나, 낡은 갈피 속에는 늙은 아비가 떨리는 손으로 붓을 쥐고 딸에게 당부를 전하려 했던 애틋한 사연이 고스란히 접혀 있다.

이 책을 정서(正書)한 이는 석계(石谿) 송순헌(宋純憲, 1870~?)이다. 1894년 갑오식년시(甲午式年試)에서 진사(進士)에 입격한 그의 본관은 은진(恩津)이요, 자는 인경(仁慶)이다. 부친은 학생(學生) 송병관(宋秉瓘)이고 아우는 진사 송정헌(宋廷憲)이니, 대대로 학문을 이어 온 유가(儒家)의 자제였음을 짐작게 한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의 본관이다. 은진 송씨는 곧 우암 송시열이 속한 가문이매, 송순헌은 우암의 가풍을 이어받은 핏줄인 셈이다. 세로 32.5cm, 가로 23cm 크기에 전 1책 단권으로 엮인 이 문헌은 단지 필사자의 유려한 글씨 솜씨만을 뽐내는 자료에 머물지 않는다. 한 가문이 여러 대에 걸쳐 무엇을 귀히 여기고, 어떤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전하고자 했는지를 방증하는 생생한 징표다.

◆ 벽에 걸어 두고 곁에 두고자 했던 딸의 마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발현시키는 대목은 본문이 아니라, 책 말미에 덧붙여진 필사기(筆寫記)에 있다. 송순헌은 그 끝에 "이 책은 우암 문정공(文正公) 부군께서 권씨가(權氏家)로 출가하는 따님을 경계하여 지으신 글이라. 부인이 갖추어야 할 온갖 행실을 다 말씀하셨으니, 남자가 『소학(小學)』을 배우듯 이대로 행하면 누구나 착한 부인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이 책을 어찌 공경하지 않으리오!"라고 적었다.
뒤이어 적힌 사연은 이 문헌에 남다른 무게를 더한다. 출가한 딸 리실(理實)이 늙은 아비의 필적을 곁에 두고자 이 책을 베껴 벽에 걸어 두려 했다는 것이다. 이에 송순헌은 노혼(老昏)하여 글씨마저 예전 같지 않은 처지임을 스스로 한탄하면서도, 근근이 힘을 다해 등서(謄書)하여 딸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짐하듯 덧붙인다. "이대로 법 받아 행하여라." 필사기 끝에는 '신사(辛巳) 6월'이라는 간지년(干支年)과 더불어 '석계(石谿)'·'송순헌인(宋純憲印)'이라는 두 방의 장서인이 선명히 날인되어 있다. 송순헌의 나이 이미 일흔을 넘긴 1941년, 우암이 세상을 뜬 지 무려 25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우암이 붓을 들어 시집가는 딸을 위해 이 글을 지은 것이 지극한 부정(父情)의 발로였다면, 두 세기 반이 지나 그 후손이 다시 붓을 들어 같은 글을 옮겨 적은 것 또한 다를 바 없는 내리사랑의 증명이었다. 이번에는 가르침을 전하려는 아비의 마음과, 그 필적이나마 남겨두고자 한 딸의 효심이 한데 포개어졌다는 점에서 사뭇 뭉클함을 자아낸다.
◆ 스무 조목에 촘촘히 담긴 수신(修身)의 도리
『계녀서』의 본문은 부모와 지아비, 시부모를 섬기는 도리로 시작하여 형제·친척 간의 화목, 자식 교육, 제사 모시는 법, 손님 대접하는 도리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여기에 투기하지 않는 도리, 말조심하는 도리, 재물을 존절히(절약하여) 쓰는 도리, 부지런히 일하는 도리, 병환을 돌보는 도리, 의복과 음식을 마련하는 도리, 노비를 부리는 도리, 물건을 꾸고 갚는 도리, 사고파는 도리, 신령께 비손하는 도리, 그리고 종요로운(중요한) 도리와 옛 선인들의 선행에 이르기까지 무려 스무 조목을 아우른다.

이러한 구성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 서책이 단순한 며느리의 예절 규범서가 아님이 명백해진다. 부부와 가족 간의 윤리에서 출발해 재산 관리와 매매라는 살림의 실무, 병간호와 관혼상제 같은 삶과 죽음의 영역, 나아가 민간 신앙의 영역까지 망라하고 있으니, 이는 한 여성이 출가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마주할 모든 국면을 미리 헤아려 편찬한 종합 생활 교본에 가깝다. 사내아이가 『소학』으로 몸과 마음을 닦듯, 딸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체계적인 수신(修身)의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우암이 맏딸을 대전 탄동의 권유(權惟, 1625~1684)에게 시집보내며 이 글을 지어 준 이래, 이 글은 후손가에 필사본 형태로 대를 이어 전해지며 여러 이본(異本)을 낳았고 유가(儒家)에 널리 퍼졌다. 송순헌이 정서한 이 책 역시 그 오랜 전승의 궤적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문헌과 구별되는 결정적 지점은, 단순한 보존의 목적이 아니라 '자기의 딸을 향한 당부'로 새롭게 쓰였다는 데 있다. 규범의 전승이라는 목적 속에서도 애초의 뜻은 흐려지기는커녕, 오히려 짙은 부정(父情)을 덧입고 되살아났다.

◆ 사주로 맺어진 인연, 소설이 발명한 낭만적 사랑
이 문헌이 놓인 역사적 자리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당시의 혼인관을 함께 짚어보아야 한다. 중매를 통한 혼인, 그중에서도 사주팔자의 음양오행을 치밀하게 헤아려 인연을 맺는 방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19세기까지 보편적인 풍습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20세기 초까지도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물론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넉넉지 않았다는 한계는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의 혼인관은, 불타오르는 감정만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다른 무엇(즉, 관계에 대한 '책임'과 '준비')을 혼인의 절대적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연애'와 '낭만적 사랑'에 기반한 혼인은 사실 그리 오래된 제도가 아니다.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김주환 교수는 인류사적으로 볼 때 연애와 혼인이 본래 철저히 분리된 영역이었으며, 사랑을 혼인의 유일무이한 조건으로 삼는 '로맨틱 러브(Romantic Love)'의 환상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구 소설 속에서 비로소 형상화된 근대의 발명품이라 짚은 바 있다. 감정의 교류로 완성되는 결혼이라는 허상은,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생존과 번영의 관습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근대 서사가 대중의 뇌리에 심어놓은 얄팍한 관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계녀서』의 세계는 찰나의 감정이 아닌, 평생을 관통하는 '준비'를 혼인의 토대로 삼았던 시대의 진중한 산물이다. 감정의 온도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도리를 다하느냐가 혼인의 성패를 가르는 척도였다. 우암이 스무 조목의 도리를 낱낱이 짚어 준 것도, 250여 년 뒤 그 후손이 힘겨운 붓을 들어 다시 옮겨 적은 것도, 이러한 헌신과 준비의 전통이 얼마나 끈질기게 이어졌는가를 증명한다.

◆ 감정이 다한 자리, 혼인을 끝까지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혼인의 동력은 전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통계청(국가데이터처)이 발표한 2025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그 이면의 풍경은 자못 암담하다. 해당 연도의 이혼 건수는 8만 8천 건으로 전년보다 3.3퍼센트 줄었고 조이혼율(粗離婚率)도 1.7건으로 소폭 낮아졌다. 언뜻 혼인이 점차 안정되어 가는 수치로 읽히나,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난다. 혼인 지속 기간이 30년을 넘는 부부의 이혼이 전체의 17.7퍼센트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이 된 것이다.
한때 간통죄 폐지가 이혼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정작 한국의 이혼 건수는 2003년 IMF 외환위기 여파 속에서 이미 정점을 찍고 완만한 내림세에 접어들었으니, 시점부터 맞지 않는다. 즉,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표면적인 수치의 증감이 아니라 이혼의 '질적 변화'다. 뜨거운 연애로 맺어져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조차 노년에 이르러 가차 없이 갈라서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된 현상은, 혼인을 지탱하는 하부 구조 자체가 '책임과 도리'에서 '유한한 감정'으로 변질되었음을 뼈아프게 시사하는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의 엄격한 가문 중심 중매혼(仲媒婚)으로 회귀하자는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며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결혼 자체가 기피의 대상이 되고 인구 소멸이 국가적 재난으로 닥친 오늘, 우리는 혼인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훌륭한 매개체였지만, 수십 년의 모진 풍파 속에서 그 관계를 온전히 지탱해 내는 힘은 결코 감정의 영역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녀서』가 낡은 한지 위에서 딸에게 건넨 것은 낭만적 사랑이라는 신기루가 아니라, 매일매일 부대끼며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배려, 즉 '삶의 기술로서의 도리(道理)'였다. 삼백 년의 세월을 건너 우리 앞에 나타난 이 필사본은 조용히 일깨우고 있다.
사랑은 혼인을 시작하게 하지만, 감정의 유효기간이 끝난 자리에서 마침내 혼인을 끝까지 지켜 내는 것은 서로를 향한 숭고한 '신뢰'와 끈질긴 '책임'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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