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증시가 가파른 상승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이 뚜렷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규모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세부 흐름을 들여다보면 일부 업종과 종목으로 자금이 재집결하는 '선별 매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코스피 지수는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외국인은 수십조 원 규모의 순매도를 이어가며 차익 실현에 나섰다. 특히 매도 상위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 현대차 등 자동차 대표주가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가가 급등한 종목을 중심으로 비중 축소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외국인의 투자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실제로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일부 국내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했다고 잇달아 공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단기 매매가 아닌 중장기적 관점의 투자 확대 신호로 해석된다.
글로벌 '큰 손' 선택은 바로 '금융'?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최근 하나금융지주 지분을 확대해 2대 주주로 올라섰고, 우리금융지주 역시 지분율을 7%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DB손해보험과 삼성전기 지분도 5% 이상 보유 중이라고 공시했다. 반도체 대표주를 대거 매도한 것과 달리 금융·부품주에서는 오히려 존재감을 키운 셈이다.
또 다른 글로벌 운용사인 웰링턴매니지먼트는 통신주에 주목했다. KT 지분을 추가 매입해 6% 이상으로 늘렸고, SK텔레콤도 신규로 5% 넘는 지분을 확보했다. 통신업은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배당 매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금리 변동성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방어적 성격을 지닌 업종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밖에도 글로벌 자금은 방산 부품, 인쇄회로기판(PCB) 등 일부 중견 제조업체로도 향했다. 이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과 전장(電裝) 수요 증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과 맞물린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외국인 순매도 흐름을 '이탈'이 아닌 '재배치'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랠리로 특정 종목의 포트폴리오 내 비중이 과도하게 확대되자 차익을 실현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금융·통신·부품 업종으로 옮겨가는 리밸런싱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금융주의 경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과 주주환원 강화 기조가 맞물리며 외국인 수급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배당 성향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정책이 가시화될 경우 추가적인 자금 유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통신업 역시 안정적 이익 구조와 고배당 매력, 5G 이후 설비투자 부담 완화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외국인 자금의 방향 전환이 코스피 상승 추세의 종료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달러 약세와 신흥국 선호 흐름이 이어질 경우 국내 증시로의 자금 유입 여건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만 업종 간 순환매가 빨라지고 있어 지수보다는 종목별 접근이 중요해졌다는 조언이 나온다.
결국 외국인은 반도체를 '버린' 것이 아니라 비중을 조정한 뒤 새로운 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대형 반도체주에서 차익을 실현한 자금이 금융·통신·부품주 등으로 흘러들어가는 흐름이 이어질 경우, 해당 업종의 추가 상승 여력에도 시장의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