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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태권도 지도자의 '염치(廉恥)'는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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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 본부장(국기원 태권도 9단, 대사범)
?김영근 본부장(국기원 태권도 9단, 대사범)

태권도는 '예(禮)'로 시작해 '예'로 끝나는 무도다. 기술과 전술을 가르치기 전에 상대를 향한 존중과 자신을 향한 절제가 선행되는 것이 태권도의 본질이다. 그러나 최근 태권도 현장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이러한 철학을 무색하게 만든다. 노력을 경시하고 결과만 탐하는 풍토, 책임을 회피하고 권한만 행사하려는 태도, 무엇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즉 염치(廉恥)의 실종이 만연해 있다.

나는 지난 43년간 지도자이자 행정가로서 태권도와 함께 살아왔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세계선수권 종합우승의 기쁨도 누렸고, 수많은 제자들의 성장과 좌절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런 나에게 요즘의 태권도계는 참담함을 넘어 묵직한 분노와 책임감을 안겨준다.

■ 제자의 꿈을 짓밟는 무책임

최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발생한 접수 누락 사태는 태권도계의 구조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선수들에게 대표 선발전은 단순한 경기 참여가 아니라 인생의 진로를 좌우하는 기회의 장이다. 특히 장애인 선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무대다. 이를 지도자의 행정 착오로 날려버린 행위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 이후의 태도였다.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 연봉 계약이라는 지위를 앞세워 선수들의 입을 막고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 언론 제소와 거짓 해명으로 이어진 대응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제자의 꿈을 짓밟고도 스스로를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도덕적 해이와 비정상적 관행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대회 현장에서 벌어진 대선배에 대한 하극상과 소란, 공권력까지 출동한 사건 등을 지켜보며 태권도 정신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여기에 허위 경력을 이용한 채용 비리 의혹, 훈련비 환수 후 개인 여행비 사용 의혹, 장애인 선수 차별 문제 등이 더해지며 태권도계는 윤리적 파산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실업팀의 경우, 지도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이 곧 공공성으로 이어진다. 실적은 전무하고 전패를 기록하면서도 직위를 유지하는 현실은 도민이 낸 혈세와 태권도계 자체에 대한 모독이다.

■ 지도자들이여, 거울 앞에 서라

태권도 지도자의 품격은 화려한 경력이나 직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제자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양심,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잘못했을 때 인정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염치를 잃은 지도자는 제자를 가르칠 자격도, 무도인의 대열에 설 권리도 없다.

관계 단체와 행정 기관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 비정상을 바로잡고 책임을 문책하는 일만이 태권도의 명예를 회복하고 묵묵히 수련에 임하는 선수들을 지키는 길이다.

오늘도 도복을 적시는 제자들이 있다. 그들의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태권도가 다시금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지도자의 자성(自省)이다. 원로로서의 이 외침이 작은 흔들림이라도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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