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좋은 성과가 나오면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겠다."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조직 내부에서 성과보상 약속 불이행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회사가 HBM4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약 500명 규모 태스크포스(TFT)를 꾸리고 주64시간 수준의 초고강도 개발 체제에 돌입했지만 정작 개발 완료 이후엔 별도의 특별성과급 지급 없이 조직을 해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HBM 개발 TFT에 참여했던 삼성전자 직원들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황상준 메모리개발담당 부사장이 개발 조직 인력들을 모아놓고 특별성과급 지급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며 "회사는 지난 2024년 하반기 HBM4 대응을 위해 약 500명 규모의 개발 TFT를 운영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HBM 공급망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라 비상체제였고 내부에서는 HBM4에서 반드시 따라잡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형성됐다"며 "원래 각자 다른 업무를 하던 인원들을 HBM 대응을 위해 하나의 조직으로 재편했다"고 말했다.
◆ "특별성과급 지급" 반복 언급…주64시간 총력전 돌입
HBM 개발 조직 내부에서는 당시 경영진이 특별성과급 지급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HBM 개발 TFT팀 소속 직원 A씨는 "황상준 부사장이 TFT 인원들을 대강당에 모아놓고 '좋은 성과가 나오면 개발팀 대상으로 특별성과급을 지급할 예정이니 개발에만 집중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며 "한 번만 한 게 아니라 분기회 때마다 특별성과급 이야기를반복적으로 해왔다"고 주장했다.
실제 개발 과정은 초고강도 근무의 연속이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52시간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당시 연구개발 조직 일부를 대상으로 고용노동부 인가를 거쳐 주64시간 특별연장근무를 운영했다.
HBM 개발 TFT에 참여했던 직원 B씨는 "HBM 개발팀을 대상으로 주64시간 이상 근무 동의서를 받았고 대부분의 인원이 야근과 주말근무를 반복했다"며 "가장 바빴던 시기에는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밤 10시 전에 퇴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말 출근은 사실상 기본이었다"며 "다들 힘들었지만 HBM4만큼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삼성 내부에서는 HBM 경쟁력 회복을 위한 총력 대응 분위기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품질 인증(Qual) 지연 논란과 HBM 경쟁력 약화 우려가 겹치며 내부 위기감이 커진 상태였다. 실제 삼성은 임원 주6일 근무 확대 등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기도 했었다.
◆ 엔비디아 'Qual' 대응 뒤 TFT 해체…"남은 건 호두과자"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HBM4 대응 과정에서 엔비디아 Qual 통과와 초기 양산 준비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개발 완료 이후 내부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됐다는 게 HBM 개발 TFT 참여자들의 설명이다.
직원들에 따르면 회사는 작년 말 HBM 개발 TFT를 해체하고 인력들을 원소속 부서로 복귀시켰다. 그러나 개발 조직 내부에서 기대했던 특별성과급 지급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복호두 논란'도 내부 상징처럼 회자되고 있다. 개발 인력들에게 호두과자가 지급됐지만 직원들은 이를 단순 격려 간식 정도로 받아들였을 뿐 실제 성과보상이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발팀 직원 B씨는 "당시에는 당연히 복호두와 별개로 특별성과급 논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아무도 호두과자 한 봉지가 약속했던 보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12%가 아니라 신뢰 문제"…노조 강경화 배경
이후 내부 반발은 노조 가입 증가와 강경 기류 확산으로 이어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개발 조직 내부에서는 "회사의 말을 더는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한다. 직원들의 불만은 단순히 보상 규모 자체보다 '약속 불이행'에 집중돼 있다는 주장이다.
B씨는 "복호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직원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회사가 했던 약속이 반복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느끼면서 신뢰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노조가 사측의 성과급 제안을 거부한 배경 역시 단순 금액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에서는 노조가 영업이익 12%가 적어서 거부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문제는 12%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게 말로만 나온 약속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요구하는 핵심은 금액 자체보다 제도화"라며 "사측이 문서와 제도로 보장했다면 협상 분위기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본지에 "별도 TF 조직을 운영한 것은 맞다"며 "핵심 개발 인력을 대상으로 주식 보상을 실제 진행했고 이를공시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특별성과급 언급 여부와 주64시간 근무 운영 및 TFT 해체 과정의 보상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인사 관련 사항이라 확인이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이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갈등이 단순 임금 협상을 넘어 조직 신뢰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핵심 개발 인력들의 피로감과 내부 불만이 커질 경우 장기적으로 연구개발 경쟁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반도체 업계 노사 갈등은 단순 임금 수준보다 성과보상 체계와 조직 신뢰 문제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며 "핵심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서도 단순 보상 이상의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