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HMM과 현대글로비스, 팬오션 등 국내 주요 선사의 지난해 실적은선사별 주력 운송 품목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컨테이너선(정기선) 중심의 사업 구조인 HMM은 운임 하락의 직격탄을 맞아 영업이익이 60% 가까이 줄었지만 현대글로비스는 완성차 비(非)계열 운송 물량 증가, 사업 다각화 등을 통해 사상 첫 영업이익 2조원 돌파라는 최대 실적을 냈다.
이 같은 실적은 해운업계에 수익성 개선 나아가 생존까지 결정하는 경영 전략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단계로 발전했다는 평가다. 해상운송 운임 반등에 기대는 단기 경쟁에서 선종 구성·계약 구조·비용 체질 개선 등 사업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주요 선사들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현대글로비스는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대 실적을 냈고 팬오션은 선방, HMM은 저조했으나 시장에서 예상한 영업이익 1조 클럽 탈락은 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 HMM, 작년 영업익 1조4612억...58.4%↓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매출 29조5664억원, 영업이익 2조73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4.1%, 18.3%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7.0%, 당기순이익은 1조7347억원으로 경영지표 모두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운 사업 부문이 전체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작년 해운 부문 매출은 5조4014억원, 영업이익 7451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5%, 104% 증가했다. 중국 완성차 운송 등 비계열 고객 증가와 고원가 단기 용선 선박 축소에 따른 선대 운영 합리화 및 운영 효율성 개선 등이 호실적으로 작용했다.
HMM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0조8914억원, 영업이익 1조4612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6.9%, 58.4%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1조8787억원, 영업이익률은 13.4%로 나타났다.
작년 컨테이너선 공급과잉과 미국의 보호관세 정책으로 인한 글로벌 무역 위축 등으로 전 노선에서 운임이 하락해 전반적으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평균 1581포인트로 2024년 평균 2506포인트 대비 37% 하락했다. HMM의 주력 노선인 미주서안 항로 운임이 전년보다 49% 하락한 것을 비롯해 미주동안(-42%), 유럽노선(-49%)도 운임이 큰 폭으로 내려앉았다.
◆ 팬오션, LNG·탱커 사업 견조한 성장...수익성 개선
HMM은 영업이익은 줄었지만 해운시황 약세 속에서도 항로 운항 효율 최적화, 고수익 화물 유치, 신규 영업 구간 개발 등으로 견조한 수익성을 유지했다고 자평했다. HMM 관계자는 "작년 4분기 시황 악화와 계절적 비수기로 일부 글로벌 선사의 실적이 적자 전환한 반면 당사는 전 분기(3분기) 대비 6.9% 증가한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 11.7% 기록하며 선방했다"고 밝혔다.
팬오션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5.3% 증가한 5조4329억원, 영업이익은 4.4% 늘어난 4919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기존 주력 사업 부문인 건화물(Dry Bulk) 운송은 글로벌 불확실성에 따른 변동성 확대에도 전년 수준의 영업이익을 유지했지만 컨테이너 부문 영업이익은 운임 하락의 여파로 45.7% 감소했다. 반면 액화천연가스(LNG) 부문은 신조선 인도 완료에 따른 본격적인 수익 창출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60% 급증했고 탱커(유조선) 부문도 노후선 2척 매각에 따른 선대 축소 영향에도 시황 호조에 힘입어 견조한 이익 성장세를 이어가며 수익성 개선을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글로벌 해운 산업이 '화주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뚜렷하게 형성돼 가는 중이며 이러한 추세는 수요와 공급 간의 불균형 확대와 운임 하락에 의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 "저운임 상수로 작용...사업구조·선종·비용관리서 결정"
글로벌 선사들의 선복량 증가율이 당분간 수요를 상회할 가능성이 큰 만큼 향후 실적에서 공급과잉과 운임 하락이 주요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운임 반등 시점을 예단하기보다 저운임 환경을 전제로 새로운 차원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해운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HMM은 컨테이너 부문에서 '허브&스포크(Hub & Spoke)' 기반 네트워크 확장 및 친환경 서비스 강화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최적 피더 운송 체제 확립 등으로 비용 구조 개선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허브&스포크 전략은 북유럽 항로 개편을 골자로 한다. 북유럽 항로에서 다수의 항만에 직접 기항(Direct Call)하던 기존 방식에서 물동량이 집중되는 핵심 거점 항만(Hub) 위주로 기항지를 축소하면서 거점 항만에 지선망(Spoke)을 구축해 서비스 효율을 극대화하는 HMM의 승부수다.
이 밖에도 HMM은 지난해부터 강화해 온 벌크 부문 선대 확충에 인공지능(AI) 산업 관련 광물 자원 운송 및 국내 전용선 사업 재개 등 신규 사업 기회를 발굴해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방침이다.
현대글로비스는 해운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오는 2030년까지 총 9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연평균 1조3000억원을 물류 인프라와 신규 선대 확충에 투입한다. 자동차운반선과 LNG·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신조 투자를 통해 선복 경쟁력을 제고하고 비계열 물동량 확대와 수익성 안정화를 동시에 노린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현대글로비스는 미래 성장에 대비해 AI·로보틱스 등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팬오션은 SK해운으로부터 장기운송계약을 연계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중고선 10척을 9737억원에 도입하기로 했다. 벌크선 선대 확충과 사업 경쟁력 확대를 위해 신규 선박 2척도 올해 발주할 예정이다. 팬오션 측은 "안정적인 구조의 사업 포트폴리오 정착을 통한 수익성 개선을 위해 VLCC 10척 리세일과 신조 발주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운임 사이클을 얼마나 잘 타느냐가 선사의 실적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저운임이 상수가 된 환경에서 어떤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상황"이라며 "선종 구성, 중장기 사업구조, 비용 관리 능력 여부에 따라 같은 시황에서도 실적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