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면서 경기 반등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출 급증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만 미국발 통상 변수와 물가 압력이라는 불확실성도 동시에 부각되며, 반등의 지속 가능성에는 여전히 조건이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수출이 만든 '2%대 성장' 시나리오
10일 주요 글로벌 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2.1%로지난해 말보다 0.1%포인트 상향됐다. 씨티는 2.4%로 가장 높은 전망치를 제시했고, 노무라와 BNP파리바는 2.3%, UBS는 2.2%를 예상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2.0%를 웃도는 수준이다.
성장률 상향의 공통된 배경은 반도체 업황 개선이다. 씨티는 반도체 수출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117%, 2분기에는 9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간 기준으로도 달러화 기준 수출 증가율이 54%에 달해 지난해의 두 배를 넘을 것으로 분석했다. 가격 주도형 수출 확대만으로도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6%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메모리 가격 지표 역시 슈퍼사이클 진입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1분기 메모리 가격이 전 분기 대비 80~90%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D램 가격은 1년 새 8배 이상 뛰며 수출 단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수출 넘어 내수까지…회복의 폭은 넓어질까
일부 IB들은 내수 회복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BNP파리바는 내수 개선을 근거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하며 "향후 몇 년간 내수가 성장률 개선의 주요 축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무라도 민간 소비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크게 개선될 것으로 내다보며 "강력한 기술 수출 모멘텀과 민간 소비의 복원력이 경제 회복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역시 반도체 수출 회복과 함께 소비·투자가 바닥을 다지고 반등할 것으로 보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제시했다. 한국은행도 공식 전망치는 1.8%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창용 총재는 "전망치에 어느 정도 상방 리스크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반도체 중심의 수출 반등이 내수로 확산될 수 있을지가 성장 경로의 관건으로 꼽힌다.
미국 관세·물가 변수…성장 상단의 시험대
반면 성장 경로를 제약할 변수도 분명하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제품 전반에 대해 25% 관세 부과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수출 회복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대미 수출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물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 품목 부진이 겹치면 성장률 상단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환율과 국제유가 변동성도 부담 요인이다. IB들이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은 2.0%로 소폭 상향됐다. 수입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경우 실질 구매력을 제약해 내수 회복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결국 올해 한국 경제는 반도체 호황이라는 강력한 모멘텀을 확보했지만, 통상 환경과 물가라는 외생 변수에 따라 성장의 폭과 지속성이 갈릴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중심의 반등을 구조적 회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2%대 성장'의 진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