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강형원 칼럼니스트 |남북한을 막론하고 코리안 사회의 교육과 과학기술에 대한 경쟁심을 설명할 때 '치열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뒤지지 않으려면 교육이 첫째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갑자기 생겨난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에서 공부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은 오랫동안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공동체와 국가의 생존 문제로 여겨져 왔다.지난 4월 평양에서 그 한 장면을 보았다. 4층짜리 학교 건물 맨 위에, 건물에서 가장 큰 글씨로 이런 구호가 붙어 있었다.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그 문구를 보는 순간 19세기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이 떠올랐다. 1866년 프랑스군의 강화도 원정에 참가했던 해군 장교 앙리 쥐베르(1844~1909)는 1873년 프랑스의 여행·지리 잡지 Le Tour du Monde에 조선에서 본 경험을 소개했다. 그가 특히 놀랐던 것은 조선 사람들의 책과 공부에 대한 태도였다.
'극동 지역 전역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자 우리의 자존심을 다소 상하게 하는 점은, 가장 가난한 집에서도 책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그런 이들은 동료 시민들로부터 경멸을 받습니다. 만약 프랑스에서도 문맹자를 향한 여론이 그토록 가혹하다면, 우리가 경멸해야 할 사람들도 아주 많을 것입니다.'
서양인이 본 당시 조선의 모습에는 오해와 편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조선을 직접 경험한 여러 외국인의 기록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조선 사람들은 공부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1886년 조선에 선교사로 온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 역시 조선 사회에서 학문과 교육이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에 주목했다. 헐버트는 조선의 오랜 학문 전통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보의 보고(寶庫)인 조선은 1,500년 동안 학문을 숭배해 왔다.'
책 자체가 귀했던 시대에도 집안에 책을 두고 자녀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은 중요한 가치였다. 이처럼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배움에 대한 존중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나타났다. 조선과 미국이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지 5년도 지나지 않은 1887년 3월 6일, 경복궁 건청궁에 처음 전깃불이 켜졌다. 고종의 명으로 미국 에디슨사의 전기설비가 도입됐고, 향원지 인근에 발전시설인 전기등소가 설치됐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기다. 미국 백악관에 전기가 설치된 것은 1891년이었다. 경복궁의 전등이 백악관보다 4년 먼저 켜진 것이다. 전구가 막 새로운 세상을 열던 시기에 조선은 이미 그 기술을 궁궐 안으로 들여오고 있었다.

이런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은 한 세기 뒤 디지털 시대에도 이어졌다.
필자가 UCLA에 입학한 1982년 처음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실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1982년 5월 서울대학교와 구미의 오늘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전신 가운데 하나인 연구기관 사이에 전용선을 연결해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을 구축했다. TCP/IP를 이용한 이 네트워크는 대한민국 인터넷 역사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 뒤 변화는 매우 빨랐다. 1986년에는 대한민국의 국가 최상위 인터넷 도메인인 .kr이 등록됐다.
1990년대에는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이 새로운 온라인 공동체 문화를 만들었고, 1994년 한국통신의 KORNET 상용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초고속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됐다. 여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선견지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군사정권 시절 수감 중이던 1981년 교도관과의 대화에서 이미 "앞으로 세계는 정보화 시대로 갈 것이며 우리나라도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하며 다가올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를 내다봤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이러한 구상을 실제 국가 정책으로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Cyber Korea 21'을 국가 정보화 전략으로 추진하며 인터넷과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았다. 전국을 광케이블 중심의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하는 사업도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초 장기간에 걸쳐 구축하려던 정보통신 인프라 건설은 크게 앞당겨졌고, 2000년 말에는 전국 144개 주요 통화권역을 연결하는 초고속 기간전송망이 구축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터넷 시대를 예견하고, 국가 차원에서 전국적인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을 밀어붙인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필자는 인터넷 초창기에 자신의 이름이나 성을 인터넷 주소로 등록할 수 있었던 시대도 기억한다. 필자는 1995년 본인의 성(姓)인 Kang을 사용해 kang.org를 등록했다. 30년 넘게 지난 지금도 같은 인터넷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사이에 대한민국은 전화선을 이용하던 PC통신 시대에서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2019년 4월에는 세계 최초로 상용 5G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4월 평양에서 필자가 본 것은 기술을 향한 이런 욕구가 남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평양은 세계 인터넷과 자유롭게 연결된 사회가 아니다. 대부분의 주민이 사용하는 것은 외부 인터넷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망', 즉 인트라넷이다. 하지만 그 제한된 환경 안에서도 사람들은 손전화기로 검색하고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신문과 뉴스도 손전화기 화면을 통해 보고 있었다.

평양에서는 미국 달러와 북한 화폐가 함께 사용되는 이중적인 화폐 환경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손전화기로 환율을 확인하고, 상점과 택시에서는 전자결제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어느 날 평양에서 한라산의 구상나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침엽수를 발견했다. 나무 이름을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한 사람이 손전화기를 꺼내더니 검색창에 몇 글자를 입력했다. 잠시 뒤 화면을 내게 보여줬다. "가문비나무." 내가 찾던 답이었다. 매우 사소한 순간이었지만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 세기 전 외국인이 조선의 가난한 집에서도 책을 발견했다면, 2026년 내가 평양에서 본 사람들의 손에는 검색창이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와 통신 환경은 남북이 크게 다르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보고, 배우고, 뒤처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낯설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kr 도메인이 등록된 것은 1986년이었다. 북한의 국가 도메인 .kp가 국제 인터넷 체계에 등록된 것은 21년 뒤인 2007년이다. 북한의 외부 인터넷 연결 역시 매우 제한적이며 오랫동안 중화인민공화국을 통한 연결에 크게 의존했다. 2017년에는 러시아 통신망을 통한 두 번째 국제 연결 경로도 등장했다. 남북의 디지털 환경에는 지금 엄청난 격차가 있다. 그러나 기술은 결국 연결을 위한 것이다. 한반도의 철도와 도로가 언젠가 다시 이어지듯, 정보통신망도 언젠가는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인터넷의 뿌리인 미국 국방부의 ARPANET은 핵전쟁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설계됐다. 일부 통신망이 파괴되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통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분산형 네트워크 기술이 발전했다. 이후 인터넷은 국경과 이념을 넘어 전 세계의 수많은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로 성장했다. 나는 미래의 코리안들이 지금 남과 북으로 나뉜 통신망을 넘어 서로 연결된 정보의 길을 공유하게 될 날을 생각한다.
19세기 조선의 집집마다 책이 있었다. 20세기 대한민국은 전국을 광케이블과 초고속망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21세기 평양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손전화기로 모르는 것을 검색하고 있었다. 도구는 달라졌다. 그러나 그 밑에 흐르는 것은 오래된 코리안의 습관인지도 모른다. 배우고, 찾아보고,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언젠가 전 세계의 8천만 코리안이 같은 정보의 길 위에서 서로 연결되는 것. 그것이 21세기 코리안들이 만들어야 할 또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주에는 '태봉에서 고려로: 왕건은 어떻게 후삼국을 통일했나' 계속됩니다.
☞강형원은 누구?

강형원은 코리안 아메리칸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로스앤젤레스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에서 활동했다. 1993년 코리안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99년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1995년, 1997년, 2026년 북한을 직접 취재했으며, 저서로 『민주화의 현장』,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성인의 길을 간 한국은 선비의 나라』가 있다. 현재 '비주얼 히스토리 오브 코리아'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문명에 관한 지식과 시각 자료를 영어권 지식 기반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