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송진현] 우리나라 역사에서 실용외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고려 초기 문신으로 외교관이었던 서희(942~998년)의 담판 사건이다.

고려 성종 때인 993년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일부 땅을 거란에 떼어주고 항복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서희는 이에 반대하고 직접 거란의 장군 소손녕을 만나러 적진으로 들어갔다. 서희는 소손녕에게 당당한 태도를 보이며 고려가 고구려의 후신임을 강조했다. 소손녕이 고려가 신라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고려의 영토에 문제를 제기한 것에 강한 반론을 편 것이다.

서희는 여진족이 차지한 강동 6주도 옛고구려의 영토임을 내세워 고려가 차지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소손녕이 이에 동의해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 피하고 강동 6주를 획득해 오히려 영토를 넓힐 수 있었다. 서희는 당시 송나라 침공을 앞둔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고려 정벌에 나섰던 거란의 속내를 꿰뚫고 빛나는 외고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취임 후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나섰다. 국제관계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최우선시한다는 외교 전략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대통령이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잘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당초 미국과의 정상 회담 등을 염두에 두고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22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이 있은 뒤 방침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에 미국이 참전하면서 중동발 경제위기가 현실화될 수도 있는 점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이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경우 국제유가는 13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는 등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이에 따라 나토정상 회의 참석 대신 중동발 위기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이 지금 당장 해야할 일로 판단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위성락 안보실장을 나토 정상회의에 보내기로 했다.

이스라엘-이란전 발발로 한국의 외교적셈법도 복잡해졌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13일 이란을 기습 침공한 것은 뇌물죄 수사 등으로 코너에 몰려있는 자신의 처지를 반전시키기 위해서였다는 비난도 거세지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맹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미국의 입장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EU 등 동맹국에까지 무차별 관세폭탄을 퍼부어 자유진영 국가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복잡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이 대통령이 나토 정상 회담에 가지않기로 한 것은 의미있는 결정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감을 갖고 있는 중동 여러나라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토는 미국과 31개 유럽 국가 등 32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지난 2022년 이후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을 파트너로 초청해온 상태다.

실용외교 측면에서 지금은 관망하는 외교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앞으로도 이념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외교정책을 구사하길 기대해 본다. <한스경제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