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강창호 기자] 20세기 미술의 시적 정수를 이룬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작품 세계가 '시간 너머'의 감각으로 서울에 상륙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마르크 샤갈 특별전: 비욘드 타임'은 오는 9월 21일까지 유화, 드로잉, 판화, 삽화, 스테인드글라스 원화 등 총 170여 점을 선보이며 관객을 초현실적 감성의 여정으로 안내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는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유화 7점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1949년부터 1953년, 그리고 1970년에 그려진 이 미공개작들은 오랫동안 작가의 작업실과 개인 컬렉터들의 소장품으로 머물러 있던 귀중한 작품들이다. 프란체스카 빌란티(Francesca Villanti) 수석 큐레이터는 "이 유화들은 샤갈의 사적인 감정과 예술적 정점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며 "그 자체로 일기장처럼 깊은 내면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총 8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기억>, <주요 의뢰작>, <파리>, <영성>, <색채>, <지중해>, <기법>, <꽃>이라는 키워드는 연대기 대신, '내면의 시간'을 따라가는 길잡이다. 큐레이터는 이를 "샤갈이라는 인간의 감정 지형도를 따라가는 정서적 지도"라고 표현했다.

공동기획자 폴 슈나이터(Paul Schnaiter)는 "이번 전시는 미술사적 위치나 거장의 이미지보다는 '인간 샤갈'에 집중한다"며, "그가 어떻게 기억하고, 사랑하고, 자유를 꿈꿨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샤갈의 판화 작업에 주목하며 "초현실주의자로서의 평단의 평가와 달리, 그의 세계를 대중에게 널리 전한 것은 오히려 판화였다. 감성과 상상력이 담긴 판화는 책 속, 일상, 수집가의 손안까지 퍼져 나갔다"고 덧붙였다.

스케치 속에 담긴 의도와 방향성

샤갈의 창작 세계를 구성하는 시작점으로서 스케치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슈나이터 큐레이터는 "초창기 드로잉과 팔레트의 흔적에서도 '무엇을 향해 그리고 싶었는가'라는 방향성이 보인다"며, "샤갈이라는 인간과의 직접적 만남을 경험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도는 전시 공간 설계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공간 디자이너 가엘 르네(Gael Renet)는 "이번 전시는 기존 샤갈 전시와 비교해 여러 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초기 스케치 작품을 소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며, "유명한 작품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초기부터 분명한 예술적 의도와 방향이 있었음을 공간적으로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다. 파리 오페라 극장의 천장화와 예루살렘 하다사 메디컬센터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미디어아트로 재현해 관람객이 오감을 통해 샤갈의 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장윤진 큐레이터는 "예술의전당이라는 공간의 상징성과, 샤갈 예술의 건축적 특성을 함께 고려했다"며, "사운드 엔지니어링까지 접목해 감상 경험을 극대화했다"고 밝혔다.

색채로 말하는 언어, 그 안에 흐르는 감정과 영혼

전시는 도슨트 해설, 오디오 가이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까지 마련돼 있어, 관람객이 샤갈의 상징 언어와 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샤갈의 언어는 색채지만, 그 안에는 꿈과 기억, 영혼이 함께 흐른다"며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그의 언어로 바라보는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샤갈은 생전에 "모든 질문과 해답은 그림 안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단정적인 메시지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한 편의 그림처럼 조용한 질문 하나를 관객에게 건넨다. 사랑은 어떤 색으로 기억되는가, 인간은 어떻게 영원을 꿈꾸는가.

그 답은, '비욘드 타임' 그 시간 너머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