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초입의 칼리간다키 계곡. 드넓은 강변과 협곡 사이로 강풍이 몰고 온 흙바람이 뿌옇게 시야를 흐린다.

나무뿌리 같은 여러 가닥의 가는 물줄기가 곡선을 그리며 흐른다. 탕베까지 펜탕, 종, 라타울라 등 여러 개의 강이 흘러들어 합류하면서 강안이 드넓은 평원처럼 보인다. 수십 길 강변 낭떠러지가 야성미 넘치는 자태로 계속 이어진다. 강가 도로변에는 고깔 모양의 거대한 흙기둥이 외봉우리 형태로 우뚝우뚝 솟아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낯선 지형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폐허가 된 망루 같은 무너진 성곽 유적이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과거 히말라야 무역상들이 거쳐 가는 관문으로 통행세를 받았단다. 이 길은 수백 년 동안 히말라야를 가로질러 인도와 티베트를 이어주는 교역로이자 종교의 길이다.

트레커들이 강가 도로변에 외봉우리 형태로 우뚝 솟아있는 고깔 고양의 거대한 흙기둥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강풍과 함께 기이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달나라를 연상케 한다.폐허가 된 망루 같은 무너진 성곽 유적이 언덕 위에 쓸쓸하게 서 있다. 과거 히말라야 무역상들이 지나가며 통행세를 내던 관문이었다.

무스탕 왕국은 오지임에도 불구 히말라야를 가로지르는 지정학적인 위치 덕에 15~17세기 티베트 인도 간 히말라야 무역의 중심지였다. 티베트의 소금과 인도의 곡물, 양, 소가죽 등을 거래하며 경제적 번영을 누린다. 북인도의 룸비니(부처 탄생지), 쿠시나가르(부처 입적지), 사르나트(최초 설법지), 부다가야(깨달음을 얻은 곳) 등 성지로 가는 가장 빠른 순례자의 길이 무스탕 루트였다. 19세기 후반 티베트의 쇄국정책으로 교역 통로인 국경이 봉쇄되면서 무스탕왕국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깊고 험하기로 이름난 칼리간다키 계곡은 상품무역은 물론 종교, 인종, 문화의 교류 통로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전 세계의 오지 트래커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찾는 트레일로 변신했지만...

작은 강이 합쳐지는 삼각주 언덕에 자리한 탕베 마을. 마을 안에 요새 유적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황토색의 벌거숭이 산, 기암절벽 사이로 난 신작로를 걸어가는 트레커. 비포장에 조악하기는 하지만 티베트국경까지 길이 뚫렸다.

이 길은 또 금단의 길이었다. 외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면서 무스탕 왕국은 신비와 은둔으로 덧칠해진 히말라야의 숨겨진 비밀의 왕국으로 알려진다. 무스탕에 대한 외국인 방문자의 최초 기록은 17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의 다 가르냐고 지우제페 마리아 신부가 본국의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산을 넘어 걸어가면 위대한 티베트 왕국 무스탄(Mustan)이 나온다. 이 왕국은 라사와는 별개의 독립된 나라다"고 썼다. 영어 문헌으로는 1793년 영국인으로 처음 네팔 왕국을 방문한 커크패트릭(Kirkpatric)이 언급한 글이 최초이다. "비니(Beeni)에서 곧장 북쪽으로 가면 히말레의 한 부분인 묵티나트가 나온다. 그곳은 칼리간다키 강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져 있으며 신성시하며 떠받드는 화석 살레그라미(Salegrami. 암모나이트)에서 나온 지명이다. 살레그라미는 무스탕지역 강 상류 바닥에서 많이 나온다.

강가에 외롭게 서 있는 투박한 불탑. 관리부실로 낙후돼 있다.무채색의 황량한 무스탕에서 초록 지대는 마을이 있음을 나타낸다. 거대한 협곡 위의 녹색 마을이 평화롭다.거대절벽을 거느린 기이한 형태의 바위산으로 이어진 칼리간다키계곡과 그 밑을 흐르는 강.

19세기 후반 들어 무스탕에 입국한 유명 외국인으로는 1879년 무스탕을 거쳐 티베트로 들어간 인도학자 사라트 찬드라 다스(1849-1917)이다. 그는 영국식민지 당국이 1860년대부터 티베트에 잠입시킨 첩자 중의 한 명으로 1891년 인도 귀환 후 다르질링의 고등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티베트에 관한 네 권의 책과 티베트 영어 사전, 티베트어 문법책을 저술했다. 나중에 그의 스파이 활동이 들통나면서 외교적 분쟁과 함께 무스탕, 티베트의 국경이 전면 봉쇄된다.
일본의 가와구치 에카이(河口慧海.1866-1945)스님의 무스탕, 돌포를 통한 티베트 잠입기는 한 편의 영화 같다. 그는 티베트에 들어가서 참된 불법을 구하고 불경을 구해 오겠다는 결심 아래 1897년 6월 일본 고베항을 떠나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한다. 다르질링에서 1년 넘게 티베트어를 배운 뒤 1899년 중국 승려로 가장해 네팔 카트만두에 잠입한다. 당시 티베트는 외국인의 라사 여행을 금지해 무스탕을 통해 티베트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차랑의 곰파에서 거의 1년 가까이 머무르면서 기회를 엿보다 마침내 북서쪽의 오지인 돌포를 통해 티베트 잠입에 성공한다. 그는 카일라스를 순례하고 라사의 세라 사원에서 1년 넘게 수행하다 다르질링이 있는 시킴 쪽의 국경을 넘는다. 그는 네팔과 티베트에 들어간 최초의 일본인으로 일본 티베트학의 시조가 된다. "티베트에서의 3년"이라는 책을 썼다. 좀솜의 무스탕 박물관에 가와구치 스님의 사진과 무스탕 여정이 전시되어 있고 마르파에도 기념관이 있다.

주상절리 절벽으로 형성된 웅장하고 아름다운 바위산 때문인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불탑이 더 신성해 보인다.

그 이후 네팔 정부의 쇄국정책으로 네팔과 무스탕 지역은 오랫동안 외국인의 발길이 끊긴다. 1951년 무스탕 왕국의 출입 금지가 풀리면서 일부 외국인 학자와 탐험가들이 학술적 연구를 명목으로 네팔 정부의 허가를 받아 들어간다. 스위스의 지질학자인 토니 하겐은 1952년 네팔 히말라야 전역의 알려지지 않은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지질조사를 벌였다. 이때 무스탕 지역도 걸어서 답사했다. 그가 6년간 히말라야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샅샅이 뒤지며 걸어 답사한 거리가 무려 28,800km에 달한다.

비바람에 깎이고 풍화되면서 자연이 만든 한약방의 천정 같은 특이한 지형. 석림, 토림 등 세상의 온갖 특이지형이 무스탕에 다 모인 것 같다.삭막하면서도 어마무시한 절벽의 비경이 초록의 숲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탕베마을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그 뒤로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허버트 티치와 이탈리아의 티베트학자 지우제페 투치(Giuseppe Tucci)가 무스탕을 방문한다. 투치 일행은 1952년 가을에 로만탕에 이틀간 머무는 등 6일간 무스탕을 여행한다. "무스탕 여행"이라는 책을 남겼다. 데이비드 스넬그로브(David Snellgrove)런던대 동양학부 교수는 1956년 돌포에서 카그베니로 내려와 칼리간다키 강을 따라 추상을 거쳐 차랑까지 올라갔으나 로만탕은 들르지 않고 묵티나트로 내려갔다. 그의 여행담을 담은 책이 "히말라야 순례(Himalaya Pilgrimage)"다.

강변 삼각주의 저지대에 자리 잡은 추상마을. 빈집이 많아 낙후돼 보인다.

무스탕 출입이 다시 금지된 시기인 1964년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미셸 페이셀(Michel Peissel)이 무스탕에 들어가 여러 달 머무르면서 이 지역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무스탕, 잃어버린 티베트 왕국'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무스탕 관련 문헌 중 내용이 가장 알차다.

분홍의 메밀밭이 바싹 메마른 대지에 생명과 색을 입힌다. 메밀은 무스탕의 주요 작물로 도처에서 재배된다.

고갯마루 굽이에 흰색의 초르텐이 외롭게 서 있다. 흙바람 속에 뒤돌아보니 강이 꺾이며 흐르는 좁은 협곡 사이로 카그베니 마을이 아련하게 보인다. 추상을 거쳐 첼레마을 입구까지는 널찍하게 잘 정비된 신작로인 코랄라(Korala.4660m)하이웨이를 따라 걷는다. 코랄라는 무스탕 북쪽 끝 티베트국경지대에 있는 높은 고개로 이곳을 넘으면 중국 티베트고원이다. 이 도로의 개통으로 옛 무역 길이 일부 소실되기도 했다. 하루에 두 번 대중교통수단인 버스가 다닌다. 외계행성에 와 있는 듯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이국적 풍경은 황량함 때문에 더욱 낯설어 보인다. 강변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수직의 붉은 사암 절벽 뒤로 기암 봉우리들이 울울 첩첩 들어서 있다. 저 앞 염소 수백 마리가 도로를 점령한 채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황량하고 광활한 웅장미, 거친 아름다움, 무거운 적막감, 이따금 씩 보이는 초록의 마을이 그런대로 나그네의 메마른 정서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언덕 위 바위 절벽에 있는 흰색 붉은색 검정색 얼룩말 줄무늬가 그려진 동굴사원 유적.추상마을서 한 가족이 모여 농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할머니의 밭고랑 같은 주름에서 세월과 생활의 신산함이 읽힌다.

겹겹의 구릉들이 부드러운 곡선의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사과 과수원 아래 강이 합쳐지는 삼각주 언덕에 초목이 우거진 탕베(3,060m)마을이 둥지를 틀고 있다. 계단식 경작지에 사과나무와 보리, 밀, 메밀, 야채가 마을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마을 옆에는 직사각형의 제법 형태를 갖춘 요새가 폐허로 남아있다. 무너진 이 성터는 로왕국의 철옹성 같은 성채였단다. 대중교통수단인 시외버스가 먼지를 꽁무니에 달고 지나간다.

성채 같은 추상마을의 전통가옥. 집들이 굴다리 등을 통해 다닥다닥 붙어 연결돼 있다.울산암 같은 거대한 바위들이 겹겹으로 길게 성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 지형이 아름답다.

올라갈수록 강변이 좁아지면서 트레일이 거대한 흙 절벽 아래로 숨어들 듯 나 있다. 추상마을이 가까워지면서 공룡의 등뼈 같은 침봉들이 톱날 모양으로 줄지어 숲을 이룬다. 오른쪽 언덕 위 바위 절벽에 흰색 붉은색 검정색 얼룩말 줄무늬가 그려진 동굴유적이 보인다. 추상마을 입구에 서 있는 붉은 전돌로 쌓은 한 무더기의 퇴락한 불탑이 마을의 수문장 같다. 낡고 닳은 타루초가 불탑을 휘감고 있다. 수천수만의 날카로운 주름살 형태에 보라, 회색, 흰색, 주황색 등으로 채색된 골짜기와 작은 외봉우리들이 숲을 이룬 석림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티베트 전통가옥이 들어선 추상마을의 골목 안 풍경

철제 출렁다리를 건너 체크 포인트에서 정식으로 퍼밋 확인 절차를 밟는다. 성채 문을 통해 추상마을(2980m)에 들어서니 빈 마을처럼 조용하다. 세 개의 강이 합류하는 세물머리로 강변이 웬만한 들판처럼 넓다. 마을서 강변을 바라보면 가슴이 확 트인다. 사과나무, 메밀 등 싱그러운 초록빛 속에 성곽이나 요새 같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