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국제뉴스) 이운길 기자 = 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의 학습 원리를 뇌과학에 적용해, 과제의 '난이도'가 기억 저장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새로운 뇌 작동 원리를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가천대학교 김창업 교수(한의과대학)와 서울대학교 김상정 교수(의과대학) 공동연구팀이 수행했으며가천대 배효진 박사와 서울대 서재우 학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자연과학 분야 국제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IF 16.6)에 7월 1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AI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편향-분산 트레이드오프(bias-variance tradeoff)' 개념을 인간의 뇌, 특히 소뇌(cerebellum)의 기억 저장 메커니즘에 접목시켰다. 소뇌는 운동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며복잡한 소뇌 피질과 단순한 소뇌 핵으로 구성된다.

연구 결과, 과제 난이도가 낮을수록 단순한 뇌 구조인 소뇌 핵에 기억이 저장되고과제가 복잡할수록 정교한 처리 능력을 가진 소뇌 피질이 학습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실험과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밝혀졌다.

연구진은 두 가지 운동 반사 과제쉬운 과제인 안구 운동 반사(OKR)와 어려운 과제인 전정안구 반사(VOR)를 생쥐에게 학습시킨 뒤, 각기 다른 뇌 구조의 기여를 분석했다.

OKR 학습 쥐는 소뇌 피질 기능이 억제된 이후에도 기억이 유지됐으며 VOR 학습 쥐는 피질 기능 억제 시 학습 효과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과제 난이도가 높을수록 뇌의 복잡한 회로에 의존해 기억이 저장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또한 연구진은 과제 난이도에 따라 기억의 일반화 범위도 달라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어려운 과제를 학습한 경우, 학습 당시의 환경이나 조건에서만 효과가 나타났고, 쉬운 과제는 다양한 조건에서도 기억이 쉽게 발휘됐다. 이는 복잡한 수영 기술은 익숙한 환경에서만 잘 발휘되고간단한 기술은 다양한 환경에서도 쉽게 적용 가능한 것과 유사한 원리다.

연구팀은 이러한 원리를 통해 AI 시스템 설계에도 새로운 접근을 제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제의 난이도에 따라 학습 시스템의 복잡도나 에너지 소모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전략은, 에너지 효율성 향상이나 AI의 평생학습 구현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창업 교수는 "기존에 설명되지 않던 기억 저장 현상을 '과제 난이도'라는 하나의 축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라며"AI와 뇌과학 간의 융합이 양 분야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 ▲기초연구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