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을 명시한 우크라이나 헌법 개정을 평화 협상의 핵심 요구조건으로 내세웠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나아가 나토의 '동진 중단 약속' 문서화를 종전 조건으로 제시할 계획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8일(현지 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3차 안보 고위대표 국제회의에서 "협상은 전쟁보다 낫지만, 성공하려면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라며 "우크라이나가 중립, 비동맹, 비핵화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은 러시아의 핵심 요구"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인 1990년 채택한 '우크라이나 주권 선언'은 영구 중립국을 표방했었는데, 나토 가입 시도를 포기하고 이 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국가 전략목표로 설정한 2019년 개헌을 철회하고 헌법을 고치라는 요구다.

러시아는 서방을 겨냥해 나토가 약속을 어기고 점차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해왔다는 기존 주장도 강조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과 유럽이 처음에는 소련에, 나중에는 러시아에 반복적으로 확신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나토가 오랫동안 동쪽으로 공격적 확장을 벌여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접경지 전체에 나토군이 증강되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전쟁 이후 나토에 가입한 스웨덴·핀란드를 겨냥해 "중립국으로서의 삶에 어떤 불편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미국이 1990년 '나토는 동쪽으로 1인치도 가지 않는다'고 약속했음에도 탈냉전 이후 나토가 동유럽을 흡수하며 자국을 위협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은 조약이 아닌 구두 발언이었을 뿐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키이우포스트는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은 1990년 미국의 약속을 반복 인용해왔다"며 "모스크바는 이제 그 확신을 서면으로 원한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조지아 등 아직 나토에 들어가지 못한 동유럽 국가들의 추가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구속력 있는 문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2022년 자국 영토로 편입한 4개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과 2014년 돈바스 전쟁 때 합병한 크름반도 지배권 인정도 핵심 조항으로 포함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군이 4개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라는 요구로, 지난 16일 열린 튀르키예 이스탄불 회담은 러시아 측이 이 같은 주장을 고수하면서 파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투표 결과 이들 지역 주민이 러시아 편입을 선택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서방은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실시해 발표한 투표를 인정하지 않는다.

라브로프 장관은 "인민의 자결권 원칙을 무시한 채 '영토 보전'만 강조하는 서방 행태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인과 러시아어 사용 인구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4년 자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키예프 정권(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은 크림반도(크름반도)와 돈바스 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내달 2일 이스탄불에서 2차 협상을 열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자국 각서를 회담 당일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블라디미르 메딘스키(대통령보좌관)가 이끄는 대표단은 이스탄불에서 각서를 제출하고 필요한 설명을 제공할 준비가 됐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대표인 루스템 우메로우 국방장관은 자국 측 각서는 이미 전달했다고 강조하며 "러시아가 출국 전에 문서를 제출해야 회담이 공허하게 끝나지 않고 종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보류하고 협상 진척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냈다. 그는 28일 "향후 2주 내에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 진행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