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에 거리를 둔 가운데, 유럽연합(EU)과 영국이 대러 압박 공조 수위를 높이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가디언, AP 등에 따르면 영국 외무부는 20일(현지 시간) "푸틴 대통령은 아직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지한 완전하고 무조건적 휴전을 실행하지 않았다"며 100여 건의 대러 제재안을 발표했다.

영국은 EU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 제재안을 통해 EU 차원의 대러 제재에 힘을 실은 것이다.

영국은 "러시아의 군사력, 에너지 수출, 정보전 지원 기관과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기관을 타격할 것"이라고 제재 취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민간 지역으로 발사된 이스칸데르 미사일 등 러시아 무기 공급망을 옥죄고, 이른바 '그림자 함대(국제 제재를 피해 불법 운항하는 유조선)' 18척에 대한 추가 제재도 가할 예정이다.

EU는 같은 날 러시아 그림자 함대 189척 등을 겨냥한 제17차 대러 제재안을 최종 승인했다. 지난 14일 상주대표회의를 통과한 제재안이 이날 외교이사회에서 의결됐다.

서방은 러시아가 운용할 수 있는 그림자 함대 규모를 400~500척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17차 제재 기준 약 350척이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러시아가 전쟁을 오래 벌일수록 우리 대응은 더 강경해질 것"이라며 인권 문제 등을 직접 다루는 추가 제재를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EU는 아울러 20일부터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러시아산 원유에 적용되는 상한가를 현행 60달러에서 50달러로 하향할 것을 제의할 예정이다.

2022년 12월부터 2년 넘게 60달러 기준이 적용돼왔기 때문에, 미국이 EU 제의에 동의해 상한가 하향이 이뤄질 경우 러시아 경제에 직접적 타격이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 뒤 대러 추가 제재에 선을 긋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후 기자회견에서 대러 제재에 대해 "그것이 일어나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면서도 "뭔가 해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제재 부과시)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당초 유럽은 러시아가 전면 휴전을 끝내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대러 제재에 착수할 것을 기대해왔으나, 일단 독자 제재에 주력하면서 미국을 설득해나갈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EU·프랑스·독일·이탈리아·핀란드 정상이 1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다자간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러 제재에 선을 긋자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미국의 제재 부과 가능성은 주시하고 있으나, EU 차원의 제재는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블라디슬라프 마슬레니코프 러시아 외무부 유럽국장은 이즈베스티야 인터뷰에서 "EU는 제재 정책이 실패했고, (오히려) 자국 경제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