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 발발 1년7개월, '중동의 화약고' 예루살렘은 마냥 평화로워 보였다. 전시 상태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기 마련인 포성은 들리지 않았고, 천진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올드 시티의 금빛 골목 구석구석을 채웠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건국 이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불리는 알아크사 홍수 기습의 비극은 일견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관광객은 조금씩 돌아오고, 예루살렘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현지 주민의 얼굴에서도 쉽게 웃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표면을 한 꺼풀만 들추면 회복되지 않은 상흔이 드러난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이후 이스라엘의 정서적 시계는 스타트업 국가로 우뚝 선 21세기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홀로코스트 직후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잔혹 행위를 하리라고 결코 믿지 않았다. 10월7일 오전 6시29분 전까지는."

이스라엘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아비브 에즈라 부국장은 20일(현지 시간) 이같이 말하며 "10월7일 24시간 전인 10월6일까지도 우리는 이스라엘이 되고자 하는 것, 되리라 믿었던 것에 집중하는 시기를 살았다"라고 토로했다.

하마스 기습 이전의 시계 속에서 이스라엘과 그 국민은 경제적 발전과 기술·과학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스스로 이스라엘을 첨단 기술과 생명공학, 통신, IT, 스타트업 국가로 바라봤다"라고 했다.

"하지만 10월7일 오전이 되자, 우리가 부인(denial)되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라는 것이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 민족에게 부인이란 자신의 존재, 즉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에즈라 부국장은 "이스라엘은 1948년 유대인의 피난처, 목소리, 검(劍)이 되어야 했기에 건국됐다"라며 "우리가 국가를 가진 이유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지킬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70년도 더 전의 건국 목적이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을 통해 다시금 뚜렷해졌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자국이 '불의 고리'에 둘러싸였고, 과거 가자 지구에서의 철수를 비롯한 팔레스타인과의 공존 노력도 힘을 잃었다는 의미다.

에즈라 부국장은 "우리는 그들을 믿었기에 부정당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는 더는 부인의 상황 속에서 살 수 없다"라고 전쟁의 목적을 설명했다. 이스라엘이 꼽는 가자 전쟁의 목적은 10월7일과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 및 이를 위한 하마스 군사·통치 능력 제거, 인질 귀환 등으로 요약된다.

그는 다만 현재의 갈등이 이스라엘-아랍 내지 유대인-무슬림 사이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극단주의 국가와 온건 국가의 마찰"이라며 "이스라엘은 온건 국가의 편에 서 있다"라고 했다.

그간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 바레인, 모로코 등과 평화로운 관계를 모색해 왔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는 아랍 세계에 견고하고 온건한 파트너를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스라엘 국민들이 10월7일 기습을 생존의 위협으로 여기는 만큼,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두 국가 해법' 실현도 한층 더 요원해졌다.

외무부 전략 담당자인 엘리 리프시츠는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서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는 극적으로 추락했다"라고 했다. 어떤 국가가 들어서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경에 또 하나의 아랍 국가를 만드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언론인 길 호프먼은 이와 관련해 "10월7일 이전에는 이스라엘에서 두 국가 해법 지지 여론이 다수였다"라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당신도 그 이유를 알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길 원치 않는다"라고 했다.

일견 평화로워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실은 쉽게 비극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인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는 걸음마다 돌아오지 못한 인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울러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마하네 예후다 전통시장 곳곳에는 이스라엘 장병의 얼굴을 새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들은 모두 사망한 장병들로, 생전 남긴 말이 스티커에 함께 새겨져 있다.

징병제를 채택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원래 제대한 청년들이 휴식차 해외로 떠나 이런 스티커를 남겼다. 비록 사망한 동료와 즐거운 여행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함께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10월7일 이후 대규모 전쟁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예비군이 다수 소집되고 전사자도 늘며, 이제는 해외로 떠나지 않은 청년들이 전쟁에서 잃은 동료를 기리며 예루살렘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관광지 곳곳에는 문을 닫은 상점들이 보였다. 전쟁으로 복무하는 동안 사업을 유지하지 못해 결국 문을 닫은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아울러 세계적인 관광지인 예루살렘 올드 시티 내부도 10월7일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한산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