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젊은 기관사들의 퇴사 비율이 높아졌다. 노조에서는 혼자 근무하는 '1인 승무제'를 중심으로 회사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정신건강 관리의 미비함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9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공사 기관사 퇴사자는 총 203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20대는 46명, 30대는 40명으로 전체 기관사 중 42%에 달한다. 지난 5년간 퇴사자 중 약 절반가량이 2030 젊은 기관사였다는 의미다.

나머지 절반가량인 109명의 퇴사자는 50대 이상에서 발생한 것으로 명예퇴직으로 인한 자연적인 퇴사로 분석된다. 40대 기관사 퇴사자 수는 8명에 그쳤다.

◆햇빛 못 보고 혼자 근무…"공황장애 앓는 기관사 많아"
노조 내부에서는 젊은 기관사들의 퇴사 이유를 공사 내 열악한 근무환경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1~4호선과 달리 5~8호선은 혼자 열차를 담당하는 1인 승무제로 근무하는데 이 근무 형태가 주요 원인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관사들의 근무 환경은 특수하다. 대부분 지하 터널 구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하며,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시간도 매우 제한적이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환경 속에서 정시, 정위치 정차 압박감으로 심리적 피로가 누적되기 쉽다.

여기에 1인 승무제로 운전실에 혼자 근무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외로움이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열차 간 충돌이나 탈선 등 안전사고에 대한 압박감, 승객들의 크고 작은 민원과 돌발 상황 등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 기관사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관계자는 "혼자 단독으로 근무하다 보니 출입문 끼임이나 열차 안에서의 크고 작은 안전 사고를 관리하면서 운전 업무도 함께 담당해야 해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기관사 중에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운전, 민원, 안전 도맡는 1인 승무제…기관사 대처 능력도 ↓
1인 승무제의 문제는 기관사의 안전 사고 대처 능력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 화재에서도 당시 28년차 베테랑 기관사가 신고 접수 후 운전 도중 열차를 멈춘 뒤 불이 난 칸에서 승객과 직접 화재를 진압해야 했다.

2인 승무제인 1~4호선은 앞에 기관사가 탑승, 후미에는 열차 차장이 탑승해 업무를 분담한다. 기관사는 운전 업무만 담당하고 열차 차장은 안전, 운행 중에 발생하는 각종 민원 업무를 맡아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대응이 수월하다.

반면 5~8호선의 경우 모든 기관사가 민원, 안전, 운전 업무를 함께 담당하는 구조다 보니 특수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이 자주 발생하면 결국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승객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해 10월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와 정책연구소 이음이 발간한 '수도권 승무방식 개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 1호선~8호선 기관사와 차장 142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업무를 끝내고 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느냐는 질문에 95%가 '지친다'고 응답했고 '매우 지친다'는 응답도 무려 약 4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3분 단위로 동일한 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승무 업무 특성상 계속적인 집중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냐는 질문에 87%는 '여유가 없다'고 응답했고 이 중 26%는 '전혀 여유가 없다'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1인 승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몰려드는 승객에 대한 관리가 중요한데 우리나라 수도권 전철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며 "현재의 운전 환경과 시스템 속에서는 수동 운전이 반드시 필요한데 혼잡도의 개선 없이 1인 승무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인건비 절감에 자동 운전…공사는 1인 승무제 유지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인건비 절감과 열차 운행 장비의 발달로 인한 자동 운전화 등의 이유로 1인 승무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현재까지도 5~8호선의 근무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나 눈이 올 때 미끄러지는 현상 ▲신호체계나 승강장안전문 오류로 정위치 정차가 어려워서 ▲차량 노후화로 인한 미달정차 ▲관제지시에 의한 수동운전 등으로 완전한 자동운전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해당 노선을 운행하는 기관사들의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가 높아지며 정신 건강 관리의 사각지대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교통공사는 기관사들의 정신 건강 관리를 위해 수 년 전부터 사내에 '마음건강센터'를 운영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노동환경의 개선이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관계자는 "지하철 안전 사고 등 우려가 있어 2인 승무제 도입을 줄곧 주장해왔지만 서울시나 공사에서는 인력, 예산 문제 등을 명분으로 도입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신 건강 관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효과가 있다고 보기에는 미비한 수준 "이라며 "결국 운전 업무와 열차 안전 업무를 병행하는 것이 업무의 가장 큰 고충인 만큼 2인 승무제 도입을 근본적인 대책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