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입양인 2세인 마릿(30)은 지난해 4월 광주시 남구 소재 한 보육원을 방문했다. 작고한 모친이 네덜란드로 입양 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마릿은 보육원 관계자의 도움으로 친생 조부의 사촌을 만났다. 10분 동안 만남으로 50년 넘게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마릿은 모친의 입양과 출생 정보 기록 열람은 물론 유전자 정보를 등록하고 대조해 가족 상봉을 돕는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도 직접 이용할 수 없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뉴시스가 11일 입양의날을 맞아 해외입양인 자녀의 애로사항을 청취한 결과, 해외입양인 '자녀'는 친생 부모의 입양 정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입양인 2세가 직접 친생 부모의 입양과 출생 정보 등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외입양인 2세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입양인 사망하면 누구도 입양 기록 열람 불가"

마릿은 이같은 제도적 제약으로 양조부모를 통해 어머니의 입양 기록을 열람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조부모에 입양정보 공개 청구를 부탁했다. 마릿은 "당사자나 양부모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 엄마의 사망 기록과 모녀 관계를 증명하는 가족관계 서류도 있었지만 소용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마저도 운이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마릿은 "제게 도움을 청한 또 다른 네덜란드 해외입양인 2세는 입양 기록 열람이 아예 불가능했다. 한국사회봉사회가 보낸 이메일에는 입양인이 사망하면 그 누구도 입양 기록을 열람할 수 없다고 설명돼 있었다"고 귀띔했다.

입양특례법 제36조는 입양인의 입양정보 공개 청구는 본인만이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입양인의 자녀는 입양정보를 받을 수 없는 셈이다.

그의 모친은 38세가 되던 생일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13살이던 그는 5년 동안 위탁가정 세 군데를 전전했다. 그 과정에서 심한 우울증도 앓았다.

마릿은 "시간이 지나면 해외입양인 1세도 세상을 떠날 날이 올 것이다. 그럼 제가 경험한 막막함을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겪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부모 세대의 봉합되지 않은 상처가 자녀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가족 모르니 질병 가족력도 '확인 불가'

친생가족 찾기는 생존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의료 부문에서 질병 예방·치료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해외입양인 2세인 미국인 타냐(37)는 지난해 암 선고를 받았을 때를 예로 들었다. 의사가 가족력을 묻자 답을 할 수 없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친생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도 소홀하지 않았다. 타냐는 2010년에 한국을 방문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입양 기록을 들고 입양기관을 찾아갔지만 막다른 길이었다.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면서 "(해외입양인 2세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대신 민간 유전자 검사 업체를 통해 먼 친척을 찾았다. 이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아 직접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정부는 2020년 1월부터 해외입양인이 해외공관에 데옥시리보핵산(DNA) 정보를 등록하면 한국의 경찰청 데이터베이스(DB)를 조회해 친생부모를 찾을 수 있는 '해외입양인 가족 찾기 유전자 등록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입양인의 자녀는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민간 유전자 검사 업체를 이용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전문가 "해외입양인 자녀도 진실 찾을 권리 보장해야"

전문가는 해외입양인 2세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해외입양인인 김오묘 보스턴칼리지 상담심리학 교수는 "입양 기록을 확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개인의 당연한 권리"라면서 "입양은 평생 계속되는 일이며 평생의 사건이고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입양 기록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제도적 거부"라고 부연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명예교수는 "입양인의 자녀라는 부분만 밝혀지면 정보를 보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돼야 한다. 이들에게도 조부모를 알 권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법률상 해석의 공간이 열린 점이 당사자에게는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 교수는 "법령이 생기기 전에는 입양 기관에서 사회복지사에 따라서 대응이 달랐다"며 "관련 법령이 없을 때는 어떤 사회복지사는 더 많이 보여주기도 했다. 입양인은 법령이 생기면서 전보다 기관이 기록을 보여주기를 꺼린다는 점을 체감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법적 모호성과 관련해서 네덜란드 해외입양인 부모 아래에서 자린 바스티안(25)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덜란드한국인인권단체(NLKRG)에서 활동하는 바스티안은 "현행법에 양부모가 서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면서 "법에 아무 규정이 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입양기관이 어떻게 할지는 누구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법률상 모호성을 지적했다.

관계기관은 해외입양인 2세가 정보공개청구 대상은 아니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현행 입양특례법상 입양정보공개청구는 양자가 된 사람만 가능하게 돼 있다"며 "해외입양인 자녀(2세)는 청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실종아동법 제11조에 따른 실종아동 등 발견을 위한 유전자 검사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입양인의 입양기록물상 친생부모 정보가 부정확하거나 신원이나 소재 파악이 안 될 때에는 무연고 입양인으로 보고 실종아동법에 따른 유전자 검사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입양인의 알권리 확대와 더 나은 정보제공을 위해 법 조항 개정 및 제도개선을 준비하는 등 입양인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