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전시현 기자]350억원을 쏟아부은 한국은행의 야심 찬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거래 실험 '프로젝트 한강'이 결국 2단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 섰다. 표면적인 이유는 최근 급부상한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실익 없는 실험에 수백억 원의 비용을 부담해 온 시중은행들의 반발에 부딪힌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최근 1차 테스트에 참여했던 은행들과의 비대면 회의를 통해 올 4분기로 예정됐던 2차 테스트를 잠정 보류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지난 4월부터 일반 국민 약 8만 명을 대상으로 1차 테스트를 강행했지만, 개인 간 송금 등으로 기능을 확대하려던 계획이 시작부터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번 결정의 이면에는 상용화 계획조차 불투명한 사업에 막대한 전산 개발 비용을 투입해 온 은행권의 쌓인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한은의 요청에 따라 리스크를 감수하며 시스템을 구축하고 테스트에 참여했지만실험 이후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는 상황에 대한 의구심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사실상 이자 없는 공공 실험에 더는 동참하기 어렵다는 일종의 보이콧인 셈이다.

물론 한은은 공식적으로는 다른 이유를 들고 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스테이블코인 도입 등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와 은행과 협의해 시작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며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한은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지난 27일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일부 위원들이 "기술 혁신을 위해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며 한은의 전향적인 태도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의 혁신을 수용하라는 압박과 금융 안정을 지켜야 한다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두고 한은의 고심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결국 한은은 공공 디지털화폐의 독자 노선과 민간 혁신 수용이라는 갈림길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