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우리뉴스) 김민재 기자 ="AI가 사람을 관리한다." 더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금융권에서 생성형 AI가 내부통제 업무까지 맡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고객 응대나 마케팅에 머물던 AI는 이제 비위 제보 접수, 불완전판매 방지, 의심 거래 탐지 등 고도의 판단이 요구되는 '감시 영역'으로까지 진출하고 있다. 인간의 실수를 줄이고 조직의 공정성을 높이는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AI, 내부 제보와 리스크 분석까지 맡는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윤리·내부통제 이슈 보고서를 통해, 생성형 AI 챗봇을 내부 제보 채널에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의 킴벌리클라크, 캐나다 법무부처럼 AI가 제보 내용을 수집하고 분석까지 수행하는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연구소는 "제보자들이 심리적 부담, 처리 불신, 실효성에 대한 의문 등으로 내부 신고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며 "AI 챗봇은 익명성과 비대면성을 기반으로 이러한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 외부 채널 기반의 익명 신고 시스템 '헬프라인'을 구축했으며, 이를 AI로 자동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단순한 제보 접수를 넘어, 데이터 기반 리스크 분석까지 염두에 둔 구상이다.

의심 거래 탐지부터 정책 관리까지…내부통제 전방위 확장

다른 은행들도 내부통제 시스템에 AI 도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영업점에서 고객 응대 시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AI 금융상담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AI가 상품 설명 누락이나 과장 광고 등을 탐지해 실수를 사전에 차단하는 구조다. 이와 함께 AI 기반 의심 거래 탐지 시스템도 가동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업무 내규 및 정책 문서를 자동으로 정리·관리하고 있으며, 해외 지사에서는 글로벌 법령 번역 기능도 준비 중이다. NH농협은행은 과거 신용감리 보고서를 AI가 전수 분석해 우량 차주와 고위험 차주를 분류하고, 이에 따라 관리 강도를 차등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가 실질적인 리스크 평가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다.

사람 대신 AI가 통제하는 시대…기회이자 과제

금융권이 AI를 내부통제에 적극 도입하는 배경에는 '사람이 가장 큰 변수'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내부통제는 공정성과 일관성이 핵심인데,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AI는 이러한 업무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속도와 정확성 면에서도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AI는 입력된 기준에 따라 일관되게 판단한다"며 "특히 내부통제처럼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되는 업무에서 AI의 역할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경영진 차원의 전략적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최근 챗GPT 실습에 참여한 뒤 "AI는 전 직원이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할 언어"라며 'AI 대전환'을 선언했다. 신한금융의 진옥동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도 AI 관련 교육을 이수하며 AI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물론, 내부통제를 AI에 맡기는 흐름이 효율성만으로 평가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AI가 과연 조직 내 복잡한 정서와 윤리적 판단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지, 판단 기준이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을지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럼에도 '감시하는 AI'는 금융권에서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조직의 신뢰와 책임은 이제 기술 위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