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임준혁 기자]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해양수산부와 함께 국내 최대 선사 HMM의 본사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제시하면서 그 명분과 실익을 두고 업계와 정치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부산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제시해 온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바다와 밀접하게 연관된 최대 국적 원양 정기선사의 본사를 부산으로 옮겨 지역 고용 창출과 해양도시로서 위상 강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이 후보는 지난 1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HMM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며 "HMM 노조로부터 동의도 얻어냈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발언은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는 지역 공약을 공개하면서 나왔다.

그는 HMM 본사 이전의 필요성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내세우고 있다. 북극항로의 시작점을 부산신항으로 만들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 국적 정기선사 HMM의 근거지도 부산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북극항로는 북극의 얼음이 녹아 선박이 지나갈 수 있게 됐고 기존 상선의 주 운송 루트인 호르무즈, 말라카해협의 불안감이 상존함으로 인해 대체 항로로서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유럽으로 가는 운항 거리만 해도 기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항로보다 열흘가량 단축할 수 있다.

이러한 발언은 최근 러시아를 중심으로 북극항로 개척이 활발해지자 한국 역시 정부와 부산을 중심으로 북극항로 개척단을 운영하고 HMM의 본사도 부산으로 이전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이 후보는 현재 HMM의 최대 주주가 정부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물론 HMM이 민간 기업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정부 출자지분이 있어 마음을 먹으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말했다.

HMM은 산업은행이 33.73%, 한국해양진흥공사가 33.32%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2016년 해운업황 침체로 경영이 힘들었던 옛 현대상선을 정부 주도로 구조 조정하면서 탄생한 회사가 HMM이다. 2016~2020년 약 7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고 산업은행 등이 올해 4월 갖고 있던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바꿔 확실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HMM을 둘러싼 민영화 논의는 해운업계 호황 시절부터 꾸준히 거론됐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상운임이 치솟으며 HMM은 10조원 이상의 유보금을 확보했고 산은과 해진공을 향해서도 HMM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제기됐다.

하지만 HMM의 1차 민영화 추진은 실패로 끝났다. 정부에서 아직 주식 전환되지 않은 영구전환사채를 끝까지 손에 쥐고 매각 대상 기업에게 경영권 보장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HMM 부산 이전이 본격 추진된다면 70%를 넘는 정부 지분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또다시 정부가 지분을 앞세워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향후 2차 민영화 과정에서 인수 후보 기업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확인 결과 민주당은 HMM 이전과 부산 인프라 구축 비용 일부를 HMM의 사내 유보금에서 일부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선대 확충과 종합물류기업으로의 도약에 사용될 유보금이 다른 목적에 쓰일 형국이다. HMM의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 경쟁력 저하 우려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 HMM 1차 매각 당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도 산은과 해진공이 "사내 유보금 사용 목적을 제한하라"고 요구하자 "경영권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어떤 기업도 인수에 참여할 수 없다"며 최종적으로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이 후보의 본사 부산 이전 공약과 관련 HMM 내부에서는 우려에 기반한 '신중론'이 대체적인 시각인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본사 이전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게 HMM 측 주장이다.

HMM의 핵심 사업인 컨테이너 해상운송(정기선)은 노동 집약적 산업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4년 말 기준 HMM의 선박 운항을 담당하는 해상직 직원은 총 827명이다. 반면 2025년 1월 말 기준 HMM이 운용 중인 선박은 모두 130척이다. 단순히 나누기만 해도 한 척당 선원이 6명 정도만 투입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론 130척이 한 번에 일시적으로 운항하지 않고 일부 외국인 선원도 투입되는 것을 고려하면 한 척당 선원 수는 더 늘어난다"면서도 "하지만 그마저도 척당 10~20명 가량"이라고 말했다.

이는 조선업, 철강업 등 노동 집약적 제조업이 고용을 창출하는 포항·울산·거제 등과 다른 양상이라는 지적이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등 대형 조선소 하나가 원청과 하청을 합쳐 3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과는 달리 HMM의 경우 보유 선박 수가 지금보다 두 배 늘어나도 선원 수는 2000명을 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HMM은 또 이 후보의 "직원들도 동의했다"는 발언을 두고 "회사 차원에서 이전을 검토한 적도 없고 노조 및 직원들이 이전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절차를 밟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HMM 해상직원들로 구성된 해원노조 측도 민주당 선거대책위위원회 산하 북극항로개척추진단 에 참여하고 있으나 본사 이전에 대해 노조 차원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육상노조는 본사 이전에 더욱 완강하다. 정성철 노조위원장이 "본사 이전은 해원노조가 아닌 생활 터전을 옮기는 육상노조의 동의가 필수적이며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해외 고객사를 만나는 것은 서울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HMM 육상직원 중 해상업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200여명은 이미 모항인 부산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업무를 맡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인원이 서울에 남아 있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핵심 화주사 거점이 대부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란 점과 국회·정부 부처 소통 등과 같은 대관 업무와 홍보 등 서울에서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직렬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2위 선사인 머스크도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에 본사를 두고 있다"며 "다른 국내 주요 선사들의 본사도 대부분 서울에 있다. 수도가 정책과 금융 중심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