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드넓은 초지 위에 말 두 마리가 날렵한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한때 경주로를 질주하며 한국 경마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명마(名馬)인 '동반의강자'와 '터프윈'이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두 명마는 이제 노년기인 스무 살로 접어들면서 경마장이 아닌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는 장수목장의 말 요양소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육십령로 백두대간 자락 46만평 부지에 자리한 장수목장은 제주목장(62만평)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경주마 생산·육성기지다.

산등성이를 따라 완만한 경사지에 조성된 이곳은 언덕 트랙, 실내외 훈련장, 씨수말 교배시설, 요양소 등을 갖춘 말산업 복합 단지다.

장수목장은 단순한 경주마 훈련 공간을 넘어 말 복지의 실현을 위한 전초기지로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말 복지'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한국마사회는 은퇴 경주마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2022년 '말 요양소'를 도입했다. 현재는 마사회 소속 유명 경주마 위주로 운영되고 있지만 복지 수요가 커지면 향후 일반 퇴역마까지 대상이 확대될 전망이다.

넓은 초지의 요양소 내부에는 악천후에 대비한 그늘막과 자동 급이대가 설치돼 있다. 관중의 환호를 받았던 인기 경주마들은 여전히 팬클럽의 사랑을 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마사회는 말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생애주기형 복지 지원'을 슬로건으로 퇴역경주마의 승용마 전환 등 관련 복지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퇴역 경주마가 이런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는 못한다. 경주마는 5~6살 때 은퇴 후 승용마로 전환되는 데 훈련이 동반된다. 질주하는 본능을 접고 걷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년 약 1300~1400마리의 경주마가 은퇴하지만 승용마로 전환되는 비율은 46%에 그친다. 농식품부와 마사회는 이 비율을 2029년까지 50%로 높이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 시행을 목표로 '말 등록제' 의무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경주마는 100% 등록이 이루어지지만, 퇴역 후에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현행 '자율' 신고제로는 등록 누락이 빈번해 이력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방치되거나 학대 받는 사례도 발생한다. 등록제가 의무화되면 말의 이동경로와 소유권 변동이 투명하게 관리돼 복지 사각지대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마사회 관계자는 "등록제를 통해 소유자가 명확히 파악되면, 동물보호법에 따른 관리 책임도 함께 부여된다"며 "말도 반려동물처럼 생애 전체를 추적 관리하고 보호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등록제를 통해 이력 관리가 가능해야만 구조, 요양, 순치, 승용 전환 등 후속 복지 정책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말 등록 비용은 약 1만원으로, 등록은 마사회 직원이 무선전자개체식별장치(RFID) 칩을 목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말에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해 말의 소유자, 혈통, 건강 등 정보를 정확하게 관리한다.

또 다른 핵심 과제는 '승마 대중화'다. 마사회는 현재 연간 약 7만명인 국내 승마 인구를 20만명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체육 교육에 승마를 포함시키는 등 제도적 기반을 다지고 있다. 2022년 말부터는 초중고 체육 정규 교과과정에 승마가 편입됐고, 지역 승마장과 연계한 체험형 수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질주하던 경주마가 퇴역 후 승용마로 전환하려면 2~3년의 조련이 필요하다. 장수목장은 전국 20개 조련시설과 협력해 승용마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마사회는 말 복지 확대와 산업 생태계 전환을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운영을 이어가는 중이다. 마사회는 연간 약 6조5000억원에 달하는 경마 매출을 통해 국내 말산업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다.

경마를 통해 얻은 수익의 9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여기에는 연간 약 700억원 규모의 축산발전기금도 포함된다. 이를 통해 말산업 전반의 복지·생산·조련 사업을 지원한다.

마사회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말을 타봐야 승용마도 쓰임새가 생기고, 경주마도 복지 있는 은퇴가 가능하다. 곧 승마 산업의 성장이 말 복지의 안정적 기반이 되는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이 말과 교감하고 함께하는 문화가 확산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