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고예인 기자]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패키징의 핵심 장비인 TC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 분야에서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가 TC본더 수율 저하와 기술력 한계에 대한 우려로 한화세미텍과 싱가포르 ASMPT 등 신규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오랜 파트너십에 균열이 생겼다.

후발주자 한화세미텍은 차세대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업계 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조만간 TC본더 신규 발주를 계획하고 있다. 기존 공급사인 한미반도체 뿐 아니라 최근 새롭게 관계를 구축한 한화세미텍도 유력 후보로 알려졌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한화세미텍과 420억원 규모의 HBM용 TC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번 신규 발주도 한화세미텍이 추가로 TC본더를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가 장비 공급선을 다변화하면서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 ASMPT 등 후공정 장비 업체들은 기존 열압착 장비인 TC본더를 '플럭스리스 본더'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한창이다.

플럭스리스 본더는 HBM 결합 공정에서 D램 칩을 연결하는 마이크로 범프에 플럭스를 사용하지 않고 칩 사이에 에폭시 몰딩 컴파운드(EMC)를 경화시키는 장비다. 기존 플럭스 방식은 칩 두께를 줄이는 데 어려움이 있고 세정 이후 잔여물이 남아 있는 점이 수율 저하의 원인이 됐다. 플럭스리스 공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HBM4 등 차세대 고적층 메모리의 수율과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선 플럭스리스 본더 공급가가 TC본더보다 20~30% 높은 만큼 기술이 상용화되면 후공정 장비 업체 실적 개선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올해 하반기 플럭스리스(Fluxless) 본더 장비 출시를 예고하면서 차세대 HBM시장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글로벌 HBM 제조사와 협업하며 플럭스리스 본더와 하이브리드 본더(범프 없이 구리-구리 직접 연결) 연구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그간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독점 공급해왔으나 최근 한화세미텍 등 경쟁사의 진입으로 공급망 다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화세미텍과 기술 유츌을 두고 특허 침해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한미반도체는 기술 리더십과 해외 고객사 확대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한화세미텍은 최근 '첨단 패키징장비 개발센터'를 신설하고 기술 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 센터는 하이브리드본딩, 플럭스리스(Fluxless) 등 포스트 TC본더로 꼽히는 차세대 패키징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플럭스리스는 납땜 공정에서 플럭스를 사용하지 않아 오염 가능성을 줄이고 공정 효율을 높이는 기술로 차세대 HBM 패키징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이번 조직 개편으로 차세대 HBM 반도체 장비 시장을 선도할 동력을 확보했다"며 "R&D 투자를 지속 확대해 기술 혁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선 미래비전총괄 부사장도 "시장 경쟁력의 핵심은 오직 혁신 기술"이라며 독보적 기술력 확보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한화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TC본더 시장 진입에 성공한 한화세미텍은 지난해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첫 납품한 데 이어 올해는 210억 원 규모의 추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의 공급망에도 본격 합류하면서 한미반도체의 강력한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플럭스리스 본더는 HBM4 등 차세대 메모리의 고적층화, 고수율 요구에 부응하는 핵심 장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이 플럭스리스 본더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