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비상계엄령의 여파로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 은행들이 자본 건정성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상 계엄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1,422원까지 환율이 급등하며 2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행히 비교적 안정을 찾고 있는 흐름이지만, 향후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라 시장 변동성은 다시 확대될 수 있다.

은행은 환율이 오르면 외화 자산에 대한 원화 환산액이 커진다. 외화 자산의 경우 위험가중치가 더 높게 적용돼 보통주자본(CET1) 비율 등 자본 적정성 지표가 악화되는데, 이에 따라 자본비율 관리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보통주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주주환원 정책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통한 주주환원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금융지주의 '밸류업' 행보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금융산업위원회의에서 "지금 환율로 12월이 되면 각 금융사 BIS 비율에 굉장히 부담이 간다"며 "그렇게 되면 금융사는 자산을 줄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829조5951억원으로 전달 대비 7758억원 줄었다. 지난 4월과 6월 기업대출 잔액을 10조원 넘게 늘리며 공격적인 영업을 펼쳐 왔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4일 타금융기관 대환 목적의 대환대출을 일시 중단했고 우리은행은 신용대출 상품의 우대금리 혜택을 삭제했다.

고환율이 계속 이어진다면 시중은행들의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기업과 가계의 대출 절벽이 심화될 수 있다.

특히 신용 등급이 낮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저소득 계층의 대출에 차질이 생길 확률이 높다.

11월 말 기준 5대 은행에서 자영업자를 제외한 중소기업 대출 잔액 성장률은 8.85%(27조5585억원)에 그쳤다.

개인사업자대출 잔액도 2050억원가량 줄어들며, 올해 들어 처음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 9월과 10월에도 잔액 증가폭이 2000억원대에 그치며, 8월까지 평균 증가액(1조607억원)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11월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전월에 비해 88%가량 급감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을 달래기 위해 최대 60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금융 공공기관 및 협회와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10조원 규모의 증시 안정펀드, 40조원대 채권시장 안정펀드 및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등 시장 안정조치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회사의 외환 건전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외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 환율 상승 위험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대규모 유동성 공급안을 밝혔다. 이날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비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골자로 하는 시장 안정화 조치 방안를 결정했다.

한은은 "사실상 시장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RP와 은행권에 대한 대출 모두 시장의 수요 만큼 (유동성을) 다 공급한다는 방침"이라며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준으로 충분히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환율 변동에 노출되어 있고 단기적 정치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국내 은행들 대출 문턱의 향방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