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정연 기자]엔비디아가 하반기 출시할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AI 반도체가 '제품 결함' 논란에 휩싸였다. 출시일이 내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IT 전문지 디인포메이션은 6일 한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블랙웰' 생산 과정에서 설계 문제를 뒤늦게 발견해 AI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는 TSMC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블랙웰'의 출하 일정은 내년 1분기로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는 당초 올해 하반기 블랙웰 본격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엔비디아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비디아 관계자는 "광범위한 블랙웰 샘플링이 시작됐고 하반기 생산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웰'은 엔비디아가 지난 3월 공개한 차세대 AI 가속기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붙여 만든 이 제품은 AI·딥러닝 같은 분야에 특화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블랙웰을 쓰면 AI 훈련 성능이 4배 개선돼 비용과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함이 발생한 제품은 '블랙웰' 시리즈 중 최고 사양인 'GB200'으로 알려졌다. 'GB200'은 5세대 HBM(HBM3E) 8개를 탑재한 엔비디아의 GPU 'B200' 2개와 중앙처리장치(CPU)를 붙인 것으로, 슈퍼칩이라고도 불린다. 'B200' 1개 가격이 최대 4만달러(5400만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초고가 제품이다.

엔비디아 '블랙웰' 납품 지연이 사실일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지난 3월부터 HBM3E를 납품하고 있으며, HBM 생산라인을 HBM3E 중심으로 전환했다. 삼성전자도 납품을 위해 엔비디아의 퀄테스트(품질 인증)를 진행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46~49%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아직 HBM3E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아 섣부른 우려라는 의견이 나온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블랙웰 라인업의 제품 변화가 AI 공급망에 유의미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아직까지 HBM 판매 주력은 4세대 HBM(HBM3)이므로 블랙웰이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곽민성 현대차증권 연구원도 "B200과 GB200 수요는 여전히 견조한 상황"이라며 "현재 HBM 제조업체들에 영향을 주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며 이와 관련한 TC본더장비 수요와 고객사 공급 스케줄 역시 변함없이 견조하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상황으로 '반(反)엔비디아' 흐름이 강화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AMD 등은 자체 개발 GPU를 출시하며 엔비디아 대항마로 나서고 있다. 애플도 AI 모델 학습에 엔비디아 칩이 아닌 구글의 TPU(텐서처리장치)칩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엔비디아 외 업체에 납품을 확대해 거래처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