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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위패 서열 논쟁 `병호시비` 마침표…호계서원 복설 고유제

영남일보 | 2020.11.19 | 신고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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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서원(虎溪書院) 내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의 위패 서열을 두고 400년간 대립해온 '병호시비(屛虎是非)'가 마침표를 찍는다.


 


19일 경북도에 따르면 오는 20일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호계서원 복설 고유제에서 퇴계 이황을 중심으로 류성룡의 위패를 좌배향, 김성일과 대산 이상정의 위패를 우배향에 함께 모신다.
병호시비는 1620년부터 세 차례나 다툼을 벌이며 지속됐으나 이번 행사로 영남 유림 간 오랜 갈등이 비로소 해결됐다.
 


병호시비란 1620년 퇴계 선생을 모신 여강서원(1573년 건립·1676년 사액을 받아 호계서원으로 개칭)에 선생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1538∼1593)과 서애 류성룡(1542∼1607)을 배향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위패를 상석인 퇴계의 좌측(좌배향)에 둘 것이냐를 두고 촉발된 논쟁이다.



당시 서애의 제자이자 대학자였던 우복 정경세(1563∼1633)가 '벼슬의 높낮이로 정해야 한다'며 영의정을 지낸 서애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학봉의 후학들은 스승이 서애보다 4살 더 많고 학식도 뛰어나다며 반발했으나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해 마지못해 따라야 했다.
 


하지만 1805년 당시 영남의 4현으로 불리던 서애와 학봉, 한강 정구, 여헌 장현광의 신주를 문묘에 배향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서애와 학봉 간 서열 문제가 불거졌다.
 


1812년에는 병호시비 3차 논쟁으로 서애 제자들은 호계서원과 결별했고 이후 안동 유림은 학봉(호계서원)과 서애(병산서원·屛山書院)로 갈라졌다.
 


이런 이유로 병산서원의 병(屛)자와 호계서원의 호(虎)자를 따서 병호시비라 불린다.
약 400년을 끌어온 논쟁은 2013년 퇴계를 중심으로 좌측에 서애를, 우측에는 학봉과 대산의 위패를 모두 모시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져 종지부를 찍었다.
 


호계서원은 원래 90칸 규모였으나 대원군 서원 철폐 때 헐린 뒤 1878년 강당을 건축했고 안동댐 건설로 1973년 지금의 임하댐 아래로 옮겨졌다.
 


하지만 임하댐 건설과 함께 물보라와 습기로 인해 서원 건물 훼손이 우려되자 지역유림과 호계서원복설추진위원회에서 이전과 복원을 요청했다.
 


이에 경북도는 2013년부터 약 15억의 예산을 들여 이전 사업을 추진했고 2017년부터는 50억을 들여 호계서원을 복원해 지난해 12월 준공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호계서원 복설은 영남 유림 대통합을 통해 이뤄낸 성과"라며 "화합, 존중, 상생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경북 정신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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