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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초대석]'배구 전설' 장윤창이 말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살아가기

뉴시스 | 2015.07.27 | 신고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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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 초대 회장…체육인 권익·복지 향상 "올인"


【서울=뉴시스】오종택 기자 = 대한민국 배구의 전설 장윤창(55·경기대 교수). 1970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남자 배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한국 배구 역사를 말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지금은 흔한 공격 기술이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센세이션이었던 백어택과 스파이크 서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2회, 은메달 2회, 세계선수권 4강, 무려 15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를 누볐다. 올드 배구팬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배구라는 스포츠를 모르지 않는다면 "돌고래" 장윤창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지낸 체육인들의 단체인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이하 선수회)" 회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같은 단체가 있다는 사실조차 사람들의 관심 밖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지난달 1990베이징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김병찬 선수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쓸쓸히 세상을 떠난 소식이 전해지며 체육인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선수회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있는 선수회 사무실에서 장윤창 회장을 만나 선수회 설립 배경과 체육계의 현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선수 시절 받은 사랑, 되돌려드리고 싶었다


장 회장은 1994년 당시 나이 34살에 코트를 떠났다. 배구 선수 생명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짧은 편인 것을 고려하면 꽤 오랫동안 선수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은퇴와 동시에 그는 지도자 제의를 뿌리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선수 생활 동안 미뤄왔던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퇴 후 공부를 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지요. 은퇴 이후 삶을 고민할 때 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니폼을 벗자마자 실천에 옮겼다. 운동만 하던 그가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위의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은퇴 후 지도자로서의 삶이 보장된 스타플레이어가 돌연 평생 멀리 했던(?) 공부를 한다고 하니 몇 달 시늉만 내다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의 생각과 달리 그는 운동할 때처럼 끊임없이 책을 파고들었다. 운동하면서 한 번도 흘려본 적이 없다던 코피까지 수 없이 쏟으며 책을 팠다. 그 결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4년 만에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 미국에서 책만 본 것은 아니었다. "도네이션(donation)" 즉, "기부"라는 문화적 충격도 경험하게 됐다.


"미국에서 있으면서 그곳의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죠. 한인단체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면서 그때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줘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 공부하겠다는 목표를 실천했듯이 한국에 돌아와서는 선수 시절 자신이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과 관심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주겠다는 다짐을 실천에 옮겼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태릉선수촌에서 함께 운동하며 알고 지낸 동료 선·후배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999년 동료 체육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임 대표를 맡아 매 달 장애인시설과 보육원, 양로원 등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마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려는 듯 음지에서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주기 위해 노력했다. 꾸준히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국가대표 시절 그랬던 것처럼 사명감과 의무감을 갖고 묵묵히 나눔을 실천했다.


◇체육인 복지와 권익 위해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 창립


그러던 중 체육인들의 은퇴 후 삶 역시 궁핍하고 자신들이 돕고 있는 사람들 못지 않게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도 국가대표로서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운동에만 매진하며 젊음을 바쳤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선수들 스스로 어려운데 남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죠. 그때부터 선수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이죠."


그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상임 대표를 1992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후배 황영조에게 넘겨주고 본격적으로 체육인 복지와 권익을 높일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1984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크 김원기와 바르셀로나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은철이 함께 발 벗고 나섰다.


준비 과정을 거쳐 2011년 9월 발기인 대회를 갖고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지낸 체육인들의 모임인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가 출범했다.


선수회는 장윤창을 회장으로 서울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이경근, 1980년대 세계 태권도를 주름 잡은 정국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핸드볼 금메달에 빛나는 임오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은철, 한국 남자 탁구계의 양대축 김택수와 유남규 등, 한국 스포츠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이름을 올려 놓고 있다.


현재는 2000여명의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 회원으로 있어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체육인 권익단체라고 할 수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면 선수회 가입이 가능해요. 지난달부터는 선수회 가입을 위한 공개모집도 하고 있어 회원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선수회 출범 이후 매년 장학기금을 모아 스포츠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메달리스트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학생 체육인들을 위해 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스포츠교실도 운영 중이다. 여기에 그간 해오던 봉사활동도 빼놓지 않고 있다.


◇다시 주위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때


하지만 선수회 운영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다.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으로 편입하기 위해 법인화를 추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4월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9월에는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됐다.


"2년 가까이 문화체육관광부 직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야 재능기부와 봉사는 물론 체육인의 권익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겠다 싶었죠. 수도 없이 문을 두드리고 요청을 했는데 문체부가 받아들여주지 않았어요.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모여 어떤 조직을 만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스스로 법인화를 추진할 수 없었던 이유다.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해 자금상 어려움이 크다. 회원들의 사재를 털어 운영되다보니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 모든 것이 회장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라고 스스로를 탓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선수회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한다.


선수회는 지금도 상임위원들이 매년 250만원 가량을 자발적으로 납부하고 협약기관 등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고 있지만 각종 사업을 펼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당초 목표했던 체육인의 권익신장과 복지증진을 위한 노력은 조금도 늦출 수 없다고 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체육인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생활고를 겪다 홀로 생을 마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베이징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 고(故) 김병찬 선수처럼 말이다.


"체육인 복지를 주장하면서도 우리의 무지와 관심 부족으로 정작 필요한 시기에 도움을 주지 못했어요. 더 이상 이 같은 불행한 일을 겪지 않도록 어려움에 처한 체육인들의 복지 대책 마련을 위해 우리 선수회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죠."


그는 문체부에서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체육인연금제도 개선과 은퇴한 메달리스트들에 대한 조사가 임시방편이 아닌 실효성을 갖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흩어져 있는 체육인 복지사업을 한곳으로 통합해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체육인복지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은 지 23년이 지났지만 태극마크를 내려 놓지 않고 있다. 그 시절 가슴에 새겼던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과 의무감은 여전히 그의 삶의 원동력이자 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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