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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진출 1호 선수의 은퇴... 꿈 많던 하승진을 추억하며

박종민 기자 | 2019.05.15 | 신고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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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NBA 리거였던 하승진이 지난 14일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KBL 제공
한국인 최초 NBA 리거였던 하승진이 지난 14일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KBL 제공

[한국스포츠경제=박종민 기자] 지난 2005년 5월 3일 서울 이태원의 나이키 매장에서 만난 하승진(34ㆍ전주 KCC)은 한국 농구의 유망주들과 ‘HA(하)’와 등번호 ‘5’가 적힌 자신의 미국프로농구(NBA)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유니폼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기 바빴다. 그날 사인회에는 약 200명의 인파가 몰렸다. 주변 거리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NBA 첫 시즌(2004-2005시즌ㆍ2라운드 17번 지명)을 소화한 하승진은 유망주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NBA 진출 2호 한국 선수가 나오길 간절히 바랐다.


◆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던 ‘한국인 최초 NBA 리거’


장차 NBA 베스트5에 들겠다는 등 꿈 많던 ‘거인’은 14년 후 농구화를 벗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NBA에 진출했던 선수의 끝이 다소 미미했다. KCC와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14일 인스타그램에 “은퇴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저를 불러주는 팀이 있을까. 혹시 다른 팀에 가더라도 적응하고 잘할 수 있을까. 제가 KCC 말고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잘할 수 있을까. 말년에 이 팀 저 팀 떠돌다 더 초라해지는 것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해보니 전부 다 힘들 것 같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삼일중 시절 잰 IQ가 146. 영리한 그는 선수 생활도 자신의 신념대로 마무리했다.


하승진은 "'KCC에서 몸과 마음, 열정을 불태웠던 선수'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열정적인 선수였다. NBA에서의 두 시즌(포틀랜드ㆍ밀워키 벅스) 동안 46경기에 출전해 평균 6.9분간 코트를 누볐다. 평균 1.5득점 1.5리바운드를 올리는 데 그쳤지만, 그의 도전과 땀방울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했다. 그는 네이트 맥밀란(55) 당시 포틀랜드 감독과 새벽 훈련도 했다. 그는 “NBA에서 특출한 게 하나도 없는 그저 그런 선수였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고 회고했다.


2000년 왕즈즈(중국 1호 NBA 리거)와 야오밍(2002년) 등에 이어 NBA에 진출한 동양 선수가 됐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국내로 유턴했다. 물론 성실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2012년 7월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할 땐 퇴근하고 귀가 후 오후 5시 30분쯤 수원 크로스핏 체육관으로 출발해 오후 7시까지 운동을 하고 집에 와 밥 대신 급히 시리얼 우유를 먹고 오후 8시부터 척 퍼슨(55) 당시 KCC 코치와 훈련을 소화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오후 10시 집에 도착해 자녀를 돌보다 오후 11시쯤 수면을 취하는 생활을 약 2년간 계속했다. 허재(54) 전 KCC 감독 역시 하승진을 두고 “성실한 선수”라는 말을 많이 했다.


◆ KCC 시절이 전성기, 다소 씁쓸한 은퇴


키 221cm에 윙스팬(두 팔을 벌린 길이)이 225㎝, 신발 사이즈 350mm에 달하는 국보급 피지컬이 기량에 대한 기대치를 과도하게 높였고, 결국 걸맞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조롱 섞인 별명도 달고 뛰어야 했다. 한 농구 관계자는 “삼일상고 시절 하승진은 인터뷰조차 꺼렸다. 지나치게 큰 키에만 과도한 관심을 주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후 NBA 진출을 확정하고 자신감이 생긴 듯하다. 이후에는 농담도 즐길 줄 아는 선수가 된 것 같다”고 떠올렸다.


키는 ‘공룡 센터’ 샤킬 오닐(216cm)을 능가하지만 유연성과 스피드, 점프력, 중거리 슛 능력 등에선 NBA 정상급 센터들에게 못 미쳤다. 오닐은 체중 147kg에도 서전트 점프가 약 81cm에 달했지만 하승진은 그렇지 못했다. 패트릭 유잉(57)처럼 중거리 슛 능력을 장착한 것도 아니었고 하킴 올라주원(56)처럼 유연하고 빠르지도 못했다. 하승진이 NBA 진출했을 때는 1980~1990년대를 호령했던 올라주원,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54) 등이 모두 은퇴하고 오닐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하승진은 ‘빅맨 기근’이었던 당시 리그에서도 출전 시간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한국프로농구리그인 KBL로 돌아와서는 두각을 나타냈다. KCC를 2차례(2008-2009ㆍ2010-2011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2009년에는 신인상, 2011년에는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었다. 특히 2010-2011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김주성(40)의 원주 DB(구 원주 동부)를 꺾으면서 국내 최고 센터로 인정 받았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한국의 은메달 획득을 도왔다.


하승진은 2018-2019시즌 오른 발목 피로골절 부상 등으로 34경기 출전해 평균 7.8득점, 6.3리바운드를 올리는 데 그쳤다. KBL에서 9시즌 동안 KCC에서만 347경기를 뛰면서 통산 4040득점 298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재계약 협상은 결렬됐지만 그는 "KCC가 좋은 선수도 영입하고 함께 손발을 맞추던 기존 선수도 성장해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우승에 도전하기를 응원한다”며 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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