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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의 역사] 스핏볼(하)

최정식 | 2017.05.28 | 신고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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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스핏볼은 침뿐 아니라 이물질을 묻히는 모든 투구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는 머드볼과 에머리볼 등 다른 모든 변칙 투구를 포함해 사용하기도 한다. 공에 흠집을 내는 방법은 샌드페이퍼나 손톱 다듬는 줄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에머리볼을 스커프볼(scuffball)이라고도 부른다. 이 스커프볼을 처음으로 사용한 투수들 중 하나가 클라크 그리피스였다.


나중에 명감독과 구단주로도 이름을 남긴 그리피스는 170㎝, 67㎏의 작은 체구였다. 힘으로 타자를 제압할 수 없었던 그는 컨트롤을 가다듬고 체인지업을 익히는 외에도 다양한 무기를 개발했다.


그는 시카고 콜츠 소속이었던 1894년부터 1899년 사이에 스커프볼, 머드볼, 담배즙을 바르는 스핏볼 등의 변칙 투구를 했는데 그런 공들을 여러 가지 투구 동작으로 던져 타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스커프볼로 유명했는데 사람들이 보는 데서도 서슴없이 스파이크로 공을 갈아대곤 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1894년부터 6년 연속 21승 이상을 올렸다. 투수로서 불리한 조건을 변칙 투구를 통해 극복한 것이다.


공에 흠집을 내는 방법으로 사포를 사용, 에머리볼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지게 한 최초의 투수는 러셀 포드로 알려져 있다. 포드는 1908년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지붕이 씌워진 관람석에서 공을 던지다가 실수로 나무 기둥을 맞혔다. 그는 흠집이 난 공을 계속 사용하다가 그 공이 놀라운 커브를 그리는 것을 알게 됐다.


흠집이 난 공을 던지면 표면의 매끄러운 부분과 거친 부분 위에 흐르는 기류에 차이가 생기면서 균형이 무너져 흠집이 난 쪽으로 휘어지게 된다. 투수가 이 공을 던지려면 휘어지게 하려는 쪽의 반대 방향에 흠집을 내고 거친 쪽을 잡고 던지면 된다. 포드는 사포로 공을 문질러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을 개발해 새로운 무기로 삼았고 다음 시즌 뉴욕 하이랜더스에서 26승을 올렸다.


그는 공을 받으면 글러브 포켓에 나있는 구멍을 통해 사포로 문지르는 방법을 썼다. 포드가 던지는 새 공의 비밀이 알려지면서 많은 투수들이 에머리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물건을 가는 각종 줄을 사용했고, 심지어 과일을 가는 강판까지 동원됐다. 야구 규칙위원회는 1914~1915 겨울 미팅에서 에머리볼을 불법 투구로 규정하고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공을 손상하는 행위를 금한 것은 초창기부터였다. 1882년에 새 공을 쓰기 위해 칼로 공의 거죽을 잘라 못쓰게 만든 데 대해 비싼 공값의 세 배가 넘는 1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 일이 있다. 공이 귀했기 때문에 한 경기에서 한두 개만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고 아주 못쓰게 되거나 잃어버렸을 경우 새 공을 쓰던 때였다.


에머리볼이 다른 것은 새 공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그 공을 쓰기 위해 흠집을 낸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물질을 묻히는 것에 비해 공에 심한 흠집을 내는 것에는 제한이 있었다.


샤인볼은 공을 축축하게 만들지 않고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마른 스핏볼'의 일종이다. 글러브나 유니폼 등에 세게 닦아 만드는데 땀띠 파우더 등 가루로 된 물질도 이용됐다. 구장에 따라서는 마운드의 잘고 부드러운 흙도 재료가 된다. '블랙 삭스 스캔들'에 연루돼 추방된 화이트삭스 투수 에디 시코트가 1915년 공을 유니폼으로 닦아 광을 내다가 그 효과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샤인볼을 활용한 것으로 유명한 투수는 데이브 댄포스다. 그는 1915년 루이스빌에서 뛸 때 먼지가 날리지 않게 그라운드에 뿌린 기름이 흙과 섞여 공에 묻은 것을 유니폼 바지에 닦다가 샤인볼의 효과를 발견했다.


스핏볼의 경우 사용이 금지된 뒤에도 그에 크게 의존하던 일부 투수들에게는 허용됐으나 댄포스는 불법 투구로 규정된 이후 샤인볼을 던질 수 없었다. 구심들은 그가 등판하면 공에 장난을 치지 않는지 계속 감시했다. 당시의 유명 심판 빌리 에번스는 댄 포스가 마운드에 오른 경기에서 무려 58개의 새 공을 쓰기도 했다.


스핏볼은 1920년 사용이 금지되면서 불법 투구가 됐다. 17명의 투수만이 은퇴할 때까지 던질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합법적으로 스핏볼을 던진 마지막 투수는 벌리 그라임스다. 처음부터 스핏볼 투수였던 그는 느릅나무 껍질을 이용해 침을 끈적거리게 만들었다. 19년의 메이저리그 활동 기간 동안 다섯 번 시즌 20승 이상을 올렸다. 1934년 41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통산 270승을 기록했다.


불법이 된 이후에도 스핏볼을 던지는 투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적발되거나 스스로 인정한 경우는 몇 안되지만 많은 투수들이 의혹을 받았고, 실제로는 그보다 많은 투수들이 던졌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60년대 중반에는 전체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25% 정도가 스핏볼을 던졌다는 설도 있다. 조 페이지와 루 버데트, 돈 드라이스데일 같은 명투수들도 스핏볼을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4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넬스 포터는 19승 7패를 기록하며 팀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이끌었다. 바로 그해에 포터는 스핏볼 투구로 처벌받은 첫 번째 투수가 됐다.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손가락에 침을 묻히지 말라는 구심의 경고를 무시했고 결국 10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스핏볼을 던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1950~1960년대에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화이티 포드는 스커프볼과 머드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결혼반지로 공에 흠집을 내기도 하고, 포수 엘스턴 하워드가 정강이 보호대의 버클로 공을 긁어 도와주기도 했다. 마운드 주위에 흙덩어리를 놓아뒀다가 공을 던질 때 바르기도 했다. 그는 1963년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때 머드볼을 사용했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자신이 머드볼에 쓴 진흙을 모으면 댐 하나는 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형제 너클볼러로 유명한 조 니크로는 은퇴 직전인 1987년 손톱 다듬는 줄과 샌드페이퍼 조각을 갖고 있다가 적발됐다. 그가 희한하게 변화하는 슬라이더를 던지자 이상하게 생각한 구심이 마운드에 올라가 찾아낸 것이다. 니크로는 그 경기에서 퇴장당했고 10일간 출장정지가 내려졌다. 니크로는 자신이 너클볼 투수이기 때문에 손톱 다듬는 줄이 필요하고, 샌드페이퍼는 손에 잡힌 물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부정 투구로 가장 악명이 높은 투수는 통산 314승을 올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게일로드 페리다. 야구 규칙 8.02는 투수 금지사항에 대한 조항이다.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가장 먼저, 그리고 상세히 설명해 놓은 것이 스핏볼 등 부정 투구다.


"투수가 투수판을 둘러싼 18피트(5.486m)의 둥근 원 안에서 투구하는 맨손을 입 또는 입술에 대는 행위."로 시작하는 이 규칙은 심판원이 취해야 할 조치에서 "투수가 각항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심판원만이 결정한다."고 규정,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 조항을 비웃듯이 어겼고, 그로 인해 더욱 강화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페리다.


1964년 새 구종으로 슬라이더를 연습하다가 지쳐 있던 페리는 팀의 베테랑 투수 밥 쇼가 이상한 공을 던지는 것을 보게 됐다. 스핏볼이었다. 쇼에게 스핏볼을 배운 페리는 곧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선발진에 들어가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페리는 스핏볼을 던지는데 갖은 윤활제를 다 이용했지만 대표적인 것은 바셀린이었다. 그래서 그가 던진 공을 '바셀린볼'이라고 불렀는데 그 자신은 '슈퍼 슬라이더'라고 말했다.


당시 스핏볼은 금지됐지만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손가락을 입에 댈 수는 있었다. 심판이나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알면서 모르는 척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스핏볼을 던지기가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공연히 금기를 깬 페리 때문에 논란이 일었고 1968년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손가락을 입에 갖다댈 수 없게 하는 새로운 규정이 생겼다.


1974년에는 규정이 더욱 강화됐다. 증거도 필요 없이 심판의 판단에 따라 스핏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투수가 항의도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나 페리는 모두의 주목을 받으면서도 이물질이 발견돼 징계를 받은 것은 은퇴 바로 전해인 1982년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스핏볼은 그 자체도 위력적이지만 타자와의 심리전에 이용되기도 했다. 페리는 은퇴 후인 1974년 자서전 《나와 스핏볼(Me and the Spitter)》을 출간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실제로 스핏볼을 던진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페리는 투구를 하기 전 다양한 동작을 취하곤 했다. 모자 챙을 만지는가 하면 뒷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언더셔츠와 유니폼 바지를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가 스핏볼을 던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타자들은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했다. 투수가 실제로 부정 투구를 하지 않고도 타자의 집중력을 빼앗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페리를 비롯해 한동안은 스핏볼을 던질 때 침보다 바셀린을 쓰는 투수들이 더 많았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스핏볼보다 에머리볼이 애용됐다. 다양한 방법으로 부정 투구를 시도해 본 투수들이 공에 흠집을 내는 편이 이물질을 바르는 것보다 훨씬 쉽고 공의 궤적을 변형시키는 데도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스핏볼이 부정 투구인 것은 규칙 상 금지됐기 때문이다. 쓰지 않기로 약속이 된 상태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스핏볼이 허용됐던 시기에는 적어도 도덕적인 문제는 없었다.


금지된 이후에는 과연 스핏볼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투수 코치와 감독을 지낸 조지 뱀버거는 "친구들과의 카드 게임에서 속임수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프로 야구 선수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스핏볼을 던진다면 그는 승부사다."라고 말했다. 피칭의 본질은 타자를 속이는 것에 있다는 이야기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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